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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눈물을 닦아주는 치유사
운전대 대신 '의약품' 싣고 떠나는 '강재근 선생'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0
16년 트럭 운전대 놓고 쿠바 오지 누비는 ‘나눔의 전도사’
타이레놀 한 알에 눈물짓는 쿠바 사람들 위해 사비 털어 의약품 지원
[쿠바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강재근 선생, Youtube @김치맨Kimchiman]
[쿠바의 열악한 의료 현실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강재근 선생, Youtube @김치맨Kimchiman]
캐나다의 광활한 대륙을 16년간 거대한 트럭으로 누비던 한 한인이 이제는 대형 트럭 대신 가방 가득 의약품을 채워 넣고 쿠바의 척박한 마을들을 찾고 있다.
그 주인공은 토론토에서 활동하며 은퇴 후의 삶을 쿠바 인도주의 지원에 바치고 있는 강재근 선생이다.
성탄절 이브였던 지난 12월 24일, 그는 김치맨과의 만남에서 쿠바의 처참한 의료 실상과 자신이 펼치고 있는 ‘의약품 보내기 캠페인’에 대한 진심 어린 소회를 전했다.

16년의 엔진을 끄고, 쿠바의 심장박동에 귀를 기울이다

인생의 황혼이라 불리는 은퇴 이후, 사람들은 대개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 한 잔이 있는 평원을 꿈꾼다. 그러나 여기, 안락한 종착역을 앞두고 스스로 핸들을 꺾어 험로를 택한 남자가 있다. 16년 동안 캐나다의 광활한 대륙을 대형 트럭으로 가로지르며 가족의 생계를 실어 날랐던 강재근. 이제 그의 앞에는 트럭 창문 밖에 보이던 끝없는 지평선 대신 가난과 질병이 할퀴고 간 쿠바 오지 마을의 민낯이 비친다.

거대한 트럭의 핸들을 내려놓고 그가 짊어진 것은 이제 ‘의약품 가방’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은퇴자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온몸으로 던지는 인문학적 응답이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뜨거운 연대다.

엔진의 진동보다 뜨거웠던 어느 엄마의 눈물

1998년, 캐나다 이민 길에 올랐을 때 그는 수치에 밝은 재원이었다. 한국에서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경리직으로 일하며 탄탄한 삶을 꾸려왔지만, 낯선 이방의 땅은 그에게 정장 대신 거친 작업복을 건넸다.
가족이라는 소중한 화물을 지키기 위해 그는 16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독한 운전석에서 보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엔진 소리는 때로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음악이었다. 그 세월을 지내고 은퇴 후 우연히 마주한 쿠바의 풍경은 그가 평생 달려온 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해열제 한 병이 없어 열이 펄펄 끓는 아기에게 성인용 타이레놀을 돌로 갈아 먹이는 엄마.
그 투박한 손마디에 맺힌 절망을 본 순간, 강재근의 가슴 속에서는 낡은 트럭 엔진보다 더 거친 진동이 일었다.

“그곳에서 나는 관광객이 될 수 없었다. 아니, 인간으로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그의 남은 이정표는 수정되었다. 목적지는 토론토의 평온한 자택이 아니라, 약 한 알이 없어 생사를 오가는 쿠바의 이름 모를 마을들이 되었다.

시혜(施惠)가 아닌 공존(共存)의 길을 묻다

심지어 강재근 선생의 나눔은 차갑거나 형식적이거나 특히 일방적이지 않다.
그는 단순히 물자를 투척하고 떠나는 ‘구호가’가 아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난 인연들을 가족으로 품어, 딸처럼 아꼈던 안젤리카의 결혼식을 친부처럼 챙기고 사위에게는 생계의 수단인 용접기를 마련해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약을 주는 행위를 넘어, 위태로운 한 가정의 미래와 존엄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다.

때로 사람들은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왜 굳이 사비를 털어 그런 수고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묵묵히 기록으로 답한다. 기부금이 어떤 약이 되었는지, 그 약이 누구의 고열을 내렸는지 사진과 수치로 남겨 기부자들에게 공유한다. 16년 트럭 인생에서 배운 ‘책임감’과 경리직 시절의 ‘정직함’이 나눔의 현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정성과 헌신이 어떻게 소멸되고 환원되는 지 느낄 수 있게 한다.

3일간의 귀국, 그리고 다시 시작될 생명의 항해

강재근 선생의 머릿속은 온통 쿠바의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어린이 감기약, 알레르기 약, 인슐린 주사기, 심지어 아이들이 손에 쥘 볼펜 한 자루까지...
오는 1월 27일, 그는 잠시 토론토 땅을 밟는다. 하지만 이는 휴식을 위한 귀환이 아니다. 다시 쿠바로 가져갈 ‘생명 가방’을 채우기 위한 72시간의 짧고 치열한 보급 작전이다.

그는 다시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돋보기 안경 하나에 세상을 다시 보게 될 노인과, 타이레놀 한 알에 평온한 잠을 청할 아이를 떠올리며 그는 낡은 가방의 지퍼를 채운다.

길 위의 치유자가 남긴 이정표

강재근 선생의 삶은 그를 엿보는 이들에게 자문할 수 있는 순간을 보여준다. 생의 마지막 구간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가 전하는 것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 ‘당신의 고통을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인류애의 증거다.

16년 동안 대륙을 누비던 억척스러웠던 트럭 운전사는 이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희망의 운전사’가 되어 다시 길을 떠난다. 그의 발자국이 지나는 자리마다, 쿠바의 눈물은 조금씩 마르고 그 자리엔 다시 사람이 살만한 온기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나눔 안내] 강재근 선생의 여정에 참여하실 분

강재근 선생은 1월 27일~30일 잠시 토론토를 방문한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겐 생명이 될 수 있다.

• 필요 물품: 타이레놀(성인/어린이), 알레르기 약, 위장약, 인슐린 주사기, 체온계, 돋보기 안경(3.0~4.0 배율)
• 나눔 문의: 강재근 (647-575-1750)
• 공식 기부 창구
‣ 주마음교회 (The Lord's Heart Church)
‣ e-Transfer: lhcofferings@gmail.com
‣ 주소: 53 Cummer Ave, North York, ON M2M 2E5 (기부금 영수증 발행 가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ereadailytoron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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