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미국과 이스라엘 정상 회담 기자회견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 평화 구상’에 합의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구상안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한다.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보수 연정이 대놓고 트럼프 구상안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로선 수용하면 ‘우파 이탈’, 거부하면 ‘미국과 갈등’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이스라엘 매체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강경 우파로 분류되는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이날 양국 정상 간 회담을 앞두고 구상안 합의의 ‘레드 라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배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금지 등 조건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위협할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언급이 암시의 형태로라도 있어선 안 된다”는 게 스모트리히 장관의 주장이다.
반면 정부 인사들과 중도 야권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받아들일 만하다는 입장이다. 아이작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정치가 이 계획을 좌초시키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야이르 라피드 야권 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인질 협상과 전쟁 종식을 위한 올바른 기반”이라고 평가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딜레마는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트럼프의 평화 구상에는 PA를 일단 배제한 채 PA가 개혁 프로그램을 완료할 때까지 기술관료적이며 비정치적인 팔레스타인 위원회가 가자를 임시 통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PA의 개혁을 전제로 팔레스타인의 자치, 그리고 국가 승인의 방향성도 열려있어 이스라엘 강경 우파들의 생각과 정면 배치된다.
강경 우파가 마음먹을 경우 네타탸후 총리의 보수 연정은 쉽사리 붕괴할 수 있다. 현재 네타냐후 연정의 실질 의석은 총 120석 중 50석 수준이다. 2022년 총선 직후 과반 이상인 64석 연정을 구성했다가 지난 7월 군 복무 면제 법안을 둘러싼 문제 등을 놓고 줄줄이 이탈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강한 정치적 생명력 때문에 ‘불사조’로 불리는 네타냐후 총리는 요즘 개별 사안에 야권의 협조를 얻어 겨우 법안을 처리하고 있는 처지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PA 역할 등을 놓고 트럼프를 움직이는 데 실패할 경우, 연정 파트너들은 네타냐후를 버릴 수 있다”며 “이스라엘의 차기 총선은 늦어도 2026년 10월까지 치러져야 하는데 그보다 앞서 연정을 붕괴시키고 조기 총선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네타냐후 총리에겐 다음 총선 전까지 강경 우파 대신 중도 야권과 손을 잡고 임시 연합을 꾸리는 우회로가 있긴하다. 국가적 중대사 앞에서 외교적 과제를 완수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승부수다. 이 매체는 “네타냐후가 이번 순간을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PA의 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아랍 국가와 신뢰를 쌓고 새로운 국가들과 관계 정상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강경 우파 성향의 베자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지난달 14일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 예루살렘 외곽의 정착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해당 지역 지도가 그려진 패널을 들고 있다.AFP=연합뉴스 결과적으로 이번 트럼프 구상안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출구전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총평이 나온다. 하마스가 붕괴하거나 항복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쟁을 끝낼 그럴 듯한 명분이 마련돼서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트럼프의 계획이 아니라면 가자 전쟁이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날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전쟁이 길어지는 한 이스라엘은 유럽과 균열을 봉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