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한국의 당뇨 인구는 2000만명이 넘는다. 당뇨병 환자와 당뇨 전 단계를 더한 숫자다. 가장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는 질병이다.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1·2 순위는 암과 치매다. 목숨을 위협할 뿐 아니라 평온한 일상을 파괴한다.
당뇨·암·치매, 이 세 질병의 공통점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가족력의 힘은 강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스스로 유전자를 교체할 수는 없다. 다만 생활 습관을 고칠 수 있을 따름이다.
우선 먹는 것부터 시작이다.
① 당뇨 쳐부수는 최고의 식품
당뇨병은 척후병같다. 스멀스멀 몸에 기어들어와 상태를 엿보고 침투한 뒤 결코 홀로 싸우지 않고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다. 몸의 구석구석마다 각종 질병이 침투해 서서히 몰락해간다. 이하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한국인은 당뇨에 취약하다. 백인보다 유병률이 높다. 췌장 크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췌장은 서양인보다 작고 지방이 많다. 인슐린 분비 능력도 떨어진다.
그런데 당뇨병엔 한번 건너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터닝 포인트’가 있다. 그 입구는 ‘당뇨 전 단계’ 구간이다. 여기서 당뇨병으로 진입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왜 돌이킬 수 없는가. 높은 혈당이 지속하면, 당을 처리하기 위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된다. 끝없는 인슐린의 파도 속에서 몸속 세포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슐린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한다. 인슐린이 나와도 혈당은 높은 채로 유지된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긴 것이다.
처리되지 못한 당은 결국 내장 지방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내장 지방은 아디포카인이라는 염증 물질을 분비한다. 이게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세포를 공격해 죽인다. 다친 췌장은 인슐린을 제대로 분비하지 못한다.
인슐린 저항성과 내장 지방, 죽어가는 췌장의 삼중주 속에 우리 몸은 당뇨병으로 진입한다. 그 이후엔 약으로 병을 늦출 수는 있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다. 만약 똑같은 생활습관을 유지한다면 악화일로에 놓인다.
하지만 전 단계에서 혈당을 잡아 당뇨병으로 진입하지 않기만 하면 우리는 안전하다. 이 기간을 영원히 연장할 수 있으며, 일반인과 똑같은 일상생활과 수명을 누릴 수 있다.
당뇨 전 단계라는 경고등이 켜진 뒤 주어진 시간은 4년이다. 이 기간 이후로 진입을 늦추기만 해도 사망 위험이 크게 낮아진다. 전 단계는 지나치게 걱정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알게 된 걸 감사해야 하는 순간이다.
당뇨를 막는 대원칙은 탄수화물을 줄여 섭취 칼로리를 낮추고 신체 활동을 늘리는 것이다. 비만을 막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품이 가장 좋을까. 최고의 식품은 식이섬유가 풍부한 것들이다. 식이섬유는 장내 미생물의 먹이다. 장내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먹고 단쇄지방산을 만든다. 단쇄지방산은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고 염증을 줄이고 면역 체계를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당뇨에 특효일 뿐 아니라 암이나 치매 같은 질병도 예방해준다. 식이섬유의 권장 섭취량은 하루 25~29g이다. 보통 녹색잎채소 100g에 통곡물로 된 밥을 먹으면 채울 수 있다.
식이섬유의 양으로 볼 때 최고의 식품은 아보카도, 표고버섯, 호박잎, 깻잎, 시금치 등이다. 특히 아보카도는 비타민 E 역시 풍부하며, 깻잎은 베타카로틴이 많으며, 시금치는 모든 영양소가 균형 잡혔다.
미국 당뇨병 협회 역시 아보카도와 시금치와 케일 같은 녹색잎채소를 당뇨병의 ‘슈퍼스타 푸드’라 칭했다. 그 외 추천 식품은 콩류, 기름진 생선, 견과류, 베리류, 신 과일, 통곡물, 우유와 요거트였다.
② 가장 확실한 치매 ‘셀프’ 테스트
치매 테스트는 복잡하다. 걱정돼 병원에 가면 우선 간단한 인지 검사를 받는다. 여기서 이상이 발견되면 혈액 검사, 실험실 검사를 거쳐 뇌 영상 검사를 받게 된다. 뇌에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찌거끼나 타우 단백질 엉킴의 상태를 본다. 이 단계가 되면 병이 있는지 아닌지를 진단받을 수 있다. 하지만 뇌 영상을 찍는 곳은 한정적이고 비용이 든다. 전체 기간이 6개월 이상 걸리는 대장정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의 정신 상태를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셀프 진단 기준 자체가 모호했고 설문도 부정확했다. 하지만 최근 호주 머독대에서 상당한 정확도로 ‘주관적 인지 저하’를 판단할 수 있는 설문이 개발됐다. McSCI-S(매커스커 주관적 인지 장애 설문-셀프 보고서)라는 이름의 설문이다.
주관적 인지 저하는 사실 치매 진단과는 약간 다르다. 주관적 인지 저하는 스스로 인지 기능이 떨어졌다고 생각해서 병원을 찾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주관적’이라서 진단 기준을 만들 수 있을지 의사들은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서 주관적 인지 저하로 판정된 사람들은 치매로 발전할 위험이 높다는 게 나타났다. 이들의 뇌에서 치매 원인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가 축적된 게 뚜렷이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주관적 인지 저하는 치매와 강력히 연결된 것이다.
이번 머독대 연구팀이 10년 넘는 개발 과정을 거쳐 만든 McSCI-S는 총 46개 문항으로 돼 있다. 질문 자체는 평이해 보여서 이게 어떻게 인지 저하를 판단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 설문은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진단 시 고려해야 하는 인지 능력 6가지를 골고루 아울러 매우 정교하게 만든 설문이다.
주관적 인지 장애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판별할 수 있는 설문이 탄생했다. 언뜻 보면 아주 기초적인 질문들로 보이지만, 연구팀이 이를 정교하게 다듬으려고 10년 넘게 매달린 결과물이다. 이하 그래픽 이가진·박지은
46개 문항에 대답마다 0~4점을 매겨서 총 184점 만점이다. 총점이 24점 이상 나오면 주관적 인지 장애에 해당한다. 점수가 더 높다면 위험이 더 크므로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아쉽게도 아직 설문의 한국어 버전은 없다. 하미드 소라비 머독대 교수는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은 번역본은 오해를 살 수 있다”며 “현재 한국인 전문가들이 번역 중”이라고 말했다.
영어로 된 버전은 대중에게 공개돼 있다. 이 링크를클릭하면면 46개 문항을 볼 수 있다.
③ 암의 역설
고령자에게서 암 발생과 사망이 줄어드는 현상은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암 발생은 50세 이후 가파르게 치솟는다. 하지만 그래프를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60을 넘어 80세에 이를수록 암 발생이 오히려 줄어든다. 이는 세계 만국 공통의 현상이다.
암은 사실 노인의 병이다. 돌연변이의 축적이 세포의 이상을 부르기 때문이다. 축적은 시간이 만든 결과다. 오래 살수록 많아지는 게 당연지사다.
그런데 왜 75세부터 암 발생이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생길까. 우선 ‘생존자 효과’를 들 수 있다. 암에 취약한 유전자나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은 이미 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것이다.
또 나이가 들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이 느려진다. 세포 분열이 많을수록 돌연변이도 더 자주 생기는데 그런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 세포 성장이 더디니 암세포가 생긴다 해도 크게 자랄 환경이 안 되기도 하다.
면역 체계 역시 젊을 때보다 약해지면서 오히려 만성 염증은 감소하다. 성 호르몬 분비가 줄어 암 성장 자극도 준다. 이를 노화의 종양 억제 효과라고 한다.
이런 설명은 가설로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그 기전이 동물 실험으로 확인됐다. 늙은 쥐에게서 세포의 특정 신호 전달 경로가 재구성돼 암이 억제된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이는 철분 공급과도 관련 있다. 이를테면 폐암에 걸리면 암이 성장하기 위해 철분이 필요하다. 철분이 성장에 필수 요소인 건 정상 세포나 암세포나 피차일반이다. 특히 줄기세포가 성숙한 세포로 자라 제 기능을 하려면 철분이 꾸준히 잘 공급돼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철분 부족을 유발하는 단백질 생산이 는다. 폐 세포가 만들어지는 것도 더뎌지지만, 종양 형성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암을 연구하다 보면 놀라운 사실도 만난다. 암을 유발하는 세포 돌연변이가 50대 이후 확 많아져 암에 걸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발암 돌연변이는 이르면 1살 때부터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어린 나이부터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흡연이나 음주 같은 습관을 줄이는 게 꼭 필요하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ck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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