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대만 선거 결과에 전 세계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중 대리전’으로 불릴 만큼 지정학적 이해가 충돌하는 대만에서 친미 주자인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賴淸德·65)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전 선거와는 달리 중국이 이례적으로 강력히 비방한 후보가 당선되면서 양안(兩岸) 사이의 긴장이 더욱 끓어오를 조짐이다. 라이 신정권이 양안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 정세가 급격히 요동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장 라이 신정권 앞에 놓인 과제가 만만찮다. 13일 총통 선거 결과 40% 득표로 과반 확보에 실패한 데다가, 함께 치른 입법원(의회) 선거에선 여소야대 상황을 맞닥뜨렸다. 민진당은 기존 61석에서 10석이나 줄어든 51석으로, 국민당(52석)에 제1당 자리도 내줬다. 대만 언론은 집권당의 3연승을 막던 ‘8년의 저주’를 깼다면서도 “적은 승리”, “과반 의석 실패”를 부각하며 “라이 당선인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이처럼 라이 신정권은 국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거인 중국과 대적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대만은 양안 관계에서 현상을 변경하지 않는 안정적인 관리 모드를, 중국은 새 총통을 길들이는 강공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라이 당선인 확정 두 시간이 지난 뒤 양안 사무를 담당하는 대만판공실을 통해 “민진당이 섬 내 주류 민의를 대표할 수 없다”며 “이번 선거가 양안 관계의 기본 구도와 발전 방향을 바꾸지 못하며, 조국 통일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강하게 대응했다.
과거 중국은 대만 총통의 당선부터 취임까지를 '절충기'라 부르며 막후 협상을 펼쳤다. 이번에는 대만을 압박하면서 미국과 협상하는 양동 전술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대만과 싸우면서도 판을 깨지 않는 '투이불파(鬪而不破)' 전략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14일 성균중국연구소는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5년 내 대만을 본격 침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단기적으론 군사·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대만을 압박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라이 당선인의 취임식(5월 20일) 직전까지 미국을 통해 대만 신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대만 주변에서 강력한 군사훈련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장기 집권 체제를 강화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에선 대만의 '미국 경사(傾斜)'를 좌시할 수 없다. 라이 당선인의 4년 임기 내에 시 주석의 4연임을 결정하는 제21차 중국공산당 대회(2027년 10월)가 열린다는 점도 변수다. 그만큼 라이 당선인의 초반 양안 관계 설정과 미국의 행보가 중요해졌다.
일단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안정적인 양안 관계를 원하는 눈치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만 짧게 답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미·중 정상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선거 결과에 평가를 아끼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다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라이 당선인의 승리를 축하한다”며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참여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강점을 보여준 대만 국민에게도 축하를 전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견제 전략의 핵심 고리인 '민주주의'를 강조한 셈이다.
중국은 발끈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담화문에서 "미 국무부가 중국 대만 지역의 선거에 대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며 "(미국이) 정치적 약속을 엄중히 어기고 '대만 독립' 분열 세력에 심각히 잘못된 신호를 발신했다"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 딩수판(丁樹範) 대만 정치대 명예교수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과거와 달리) 만일 5월 라이 총통의 취임식에 미국이 대표단을 보낸다면 대만은 더 많은 군사적 침입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 해도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 등 극단적인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낮게 본다. 미국의 견제로 반도체 수급이 불안한 중국이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의 절대 강자인 대만을 공격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안 관계의 최대 변수는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더 강경한 '중국 때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만큼 대만을 둘러싼 안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특히 미국이 대만에 첨단 무기 판매를 늘리고, 대만 방어를 위해 병력 재배치에 나설 경우 중국이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신중한 모습이다. 14일 외교부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양안 관계사 평화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며 “대만과 관련한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대만 현지에서 선거를 지켜본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미·중이 대만을 놓고 다투면서도 선을 지키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번 선거의 의미에 대해 과도한 해석을 내놓거나 무력 충돌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한·중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현 상황에 대한 차분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한·미, 한·미·일 간 안보 협력을 공고히 하면서 한·중 관계의 변화를 모색할 모멘텀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대만 선거 결과를 두고 '대만해협과 한반도 모두의 평화와 안정을 기대한다'는 등의 신중하고 절제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ck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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