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를 앞둔 30일 오후 미국 워싱턴 D.C.의 미 국회의사당.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미국 연방정부가 1일 0시 1분을 기해 멈춰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예산안이 미 상원에서 부결되면서 예산을 쓸 수 없는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여야가 7년만에 반복된 셧다운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이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것을 없앨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책 방향에 맞지 않는 부처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을 시사한 발언이다.
1·2기 모두 셧다운…임시예산안도 부결
상원은 2025회계연도 종료일인 30일 셧다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 공화당이 제출한 7주짜리 임시예산안(CR)을 표결에 부쳤지만, 찬성 55 대 반대 45로 부결됐다. 상원 100명 중 공화당이 53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예산안 정족수인 60명을 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해병대 콴티코 기지에 모인 고위 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진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6회계연도 예산안을 논의하기 위해 11월 21일까지 임시로 정부를 운용하기 위한 공화당의 단기 예산안은 물론, 민주당이 자체 발의한 임시예산안 처리까지 무산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필수 인력에 대한 지출을 제외하고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모든 예산을 쓸 수 없게 됐다. 공공 서비스 영역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의미다.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은 예산안 처리가 불발된 뒤 정부 기관에 보낸 메모에서 “영향을 받게 될 기관들은 대응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며 연방 공무원들이 1일 출근해 “질서 있게 셧다운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 예산국(CBO)은 셧다운에 돌입하면 필수 인력을 제외한 연방정부 공무원 75만 명이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가게 된다고 밝혔다. 무급휴가에 돌입하는 연방정부 공무원에 대한 보상금만 하루 4억 달러(약 5600억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없어질 대상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12월 22일~2019년 1월 25일) 이후 7년만이다. 당시 셧다운은 미 역사상 최장기간인 35일간 이어졌고, 이 바람에 30억 달러(약 4조 2000억원)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서 부분 정부 셧다운이 시행되기 몇 시간 전 상원 표결 후 기자회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CNN과 인터뷰에서 “이제 남은 유일한 질문은 (민주당의) 척 슈머(상원 원내대표)가 얼마나 오랫동안 정부를 폐쇄할 것인가”라며 “매우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동의할 때까지 동일한 임시예산안을 매일 상정할 계획이다. 야당에 대한 양보 없이 연방정부 폐쇄의 장기화에 대한 책임을 야당에게 지우겠다는 의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폐쇄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그는 “셧다운으로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것들을 없앨 수 있고, (없어지는 것은) 민주당 추진 사안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게 될 것이고, 그들은 민주당원들일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흉상 옆에서 연설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셧다운 사태를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실제 백악관은 지난주 정부 폐쇄 시 해고 계획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지시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에 맞지 않는 자리를 영구적으로 없애는 내용의 광범위한 감원 대상이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간선거 앞둔 ‘치킨게임’…법원에도 제동?
미 행정부가 셧다운 사태에 빠진 표면적 이유는 올해 말 ‘오바마 케어(ACA)’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는 데 따른 여야의 이견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화이자와의 의약품 저가 판매 합의를 발표하는 날 집무실에서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통과시키면 “저소득층 400만명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2000만명의 보험료가 인상되며, 10년 안에 1000만명의 추가 무보험자가 생긴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해당 예상의 수혜자의 상당수가 불법이민자”라며 “미국인의 세금이 불법이민자를 지원하는 데 쓰여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배경엔 내년 중간선거가 있다. 강경 지지자를 의식한 결과란 분석이다. 양당은 이민자 단속,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선거구 조정, 주요 도시의 군 병력 투입, 찰리 커크 암살 등 정치적 폭력, 정치 보복 논란 등으로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사법 기능의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셧다운으로 인한 연방법원의 업무 둔화는 사법부가 트럼프 정책에 대한 쟁점을 처리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특히 심각할 수 있다”며 “판사들의 급여는 의무 지출로 충당되더라도 기타 법원 직원에게 무급 휴직이 적용될 수 있어 민감한 사건의 처리 시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