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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고 절대적인 빌런의 탄생기, 조커

2019-10-07 0
영화 <조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2. 이런 독창적인 캐릭터의 구축은 무려 24kg을 감량하며 배역에 몰입한 호아킨 피닉스의 어마어마한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사전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한 토드 필립스 감독과 각본가 스콧 실버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라 봅니다. 이 둘은 기존에 없었던 오리지널 스토리텔링을 만들기 위해 만화로도 대성공을 했던 <킬링 조크>를 비롯 조커라는 캐릭터의 원형이 되었던 1928년 무성영화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와 1970년대 살인 광대(The Killer Clown)로 악명을 떨쳤던 연쇄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의 범죄연구까지 정말 방대한 양의 사전조사를 합니다.






조커라는 캐릭터는 히어로 코믹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빌런이었고 최악의 빌런이었으며 모든 빌런을 통틀어 가장 지능적이며 순수한 악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 탄생은 화학약품에 떨어진 후 빌런이 되었다는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독자적이며 현실적인 캐릭터 구축은 필연적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히스 레저의 조커라는 거대한 벽이 있었으니 그 기원을 다루려면 빌런이 되는 개연성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 <조커>는 처절하리만치 현실적이며 암울합니다. 카메라는 어려서부터 정신병(조현병)을 앓기 시작했고 신체적인 결함이 있어서 사회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고담(뉴욕)의 최하층민 아서 플렉스(조커)에게 촛점을 맞추며 사회적 소외계층의 삶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 봅니다.






3. 그나마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했던 1980년대 미국, 사회적인 성공은 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도 힘든 아서의 삶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코미디언으로서의 성공은 행동장애로 인한 병적웃음증(pathological laughing) 때문에 더더욱 이루기 힘듭니다. 게다가 정부지원으로 가능했던 정신질환 치료용 약품들은 건강보조금 축소정책으로 인해 더이상 지급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점점 촘촘하게 무게를 얹으며 아서의 정신을 천천히 무너뜨립니다. 우연히 얻게 된 권총으로 인해 전철에서 은행원 셋을 죽이게 된 아서는 잠시 좌절을 분노의 쾌감으로 바꾸게 되고 연애도 시작하지만 박복한 삶에 행운이 쉽게 찾아올리 없습니다. 코미디언으로서의 첫무대는 상황과 맞지않는 병적웃음 때문에 망치게 되고 존경하던 코미디언 머레이는 자신의 TV쇼에서 그 장면을 보여주며 비웃습니다.






게다가 병증은 더욱 악화되 망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지경까지 오고 점차 살인 사건에 대한 수사망은 좁혀옵니다. 또한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아서는 어떻게든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도움을 바라는 손길은 외면 받았고 진실은 왜곡되었기에 그의 정신은 산산조각 나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웃음거리로 나왔던 그의 실패한 코미디는 의외로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됩니다. 이에 꿈에 그리던 머레이의 TV쇼에 나가게 되고 그 방송에서 스스로 ‘조커’라고 소개한 아서는 자신이 전철 살인범인 것을 밝히게 됩니다. “내 삶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다”, “사회에 나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은 예의가 없다”라고 말하는 조커에게 머레이는 “좋고 나쁨을 누가 정하냐”고 반문하지만 “선과 악의 구분도 코미디와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삶의 가치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임을 대중과 시청자들에게 반문합니다. 그후 내내 자신을 조롱했던 머레이를 향해 마지막 방아쇠를 당깁니다.















4. 이 영화는 담고 있는 은유와 주제를 생각하면 꽤 문제적 작품입니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인용하듯 <조커>는 성공한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던 광대의 내면을 깊숙이 파해치며 희극이고자 했지만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아서 플렉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반으로 갈렸습니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베니스 영화제 당시 만장일치로 호평을 받았으나 미국에서는 의외의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사회 후 평론가들은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불편함과 모방범죄의 우려를 표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견해는 거의 없다”라고 했던 토드 필립스 감독의 인터뷰와 상반되게 영화는 굉장히 선동적이며 정치적입니다. 비참하게 묘사된 아서와 피지배계층의 삶은 현재 미국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에는 미국 화이트 트레쉬(백인 하층민) 계층의 지지가 절대적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내새운 정책 대부분이 이 화이트 트레쉬 계층의 지지를 받기 위한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그들은 트럼프를 뽑으면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램과는 반대되게 미국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깊어졌으며 영화와 마찬가지로 저소득층을 위한 보조금 제도는 축소되었고 보호받지 못하는 하층민의 삶으로 계층간의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영화의 조커처럼 성공은 커녕 매일을 삶을 연명하는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단지 백인 하층민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까지 확산되며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에 배트맨의 다정하고 정의감 넘치는 아버지로 묘사되었던 토마스 웨인이 대변하는 모습은 마치 트럼프와 닮았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넘치는 지배계층. 고담을 위해 다양한 선행을 배풀지만 자신의 이익과 권력상승을 위해서 대중의 지지를 이용하는 캐릭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울한 상황에서 조커가 던지는 메시지는 꽤나 선동적입니다.






‘사회적 실패가 나의 무능력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추악함 때문이었다’ 또한 ‘내 삶이 죽음보다 가치 있기를’이라고 되뇌이며 자살을 암시하는 행동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한 상황을 부추깁니다. 결말에서 조커가 보여주는 행동들은 분노의 결론을 자기 자신의 죽음 혹은 권력자들의 처단으로 이끌 수 있는 극단적 뉘앙스를 담고 있기에 총기규제가 쉽지 않은 미국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또한 영화에서 보여주는 결말의 지옥도는 외부의 테러가 아닌 분노한 미국내 군중들의 폭력적 테러로 귀결될 수 있기에 더더욱 걱정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더이상 권선징악적 영웅적 행동이 ‘정의’의 기준임을 믿지 않는 사회에서 대중의 분노를 대변하는 빌런의 등장은 그자체로도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2012년 <다크 나이트> 상영 때도 조커를 모방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조커의 강렬한 캐릭터에 심취한 제임스 홈스(범행 당시 24살)가 콜로라도주 덴버 인근 도시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58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단순히 팬을 넘어 계층간의 불화로 이어져 그것보다 더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이 영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5. 영화의 결말은 미디어의 역할도 은유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인기있는 티비쇼를 비추지만 그걸 통해 던진 메타포는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영화에선 인기를 얻기 위한 자극적인 TV쇼를 통해 대중과 방송국의 관계성을 보여주지만 이 사실을 현재에 반영하면 꽤나 씁쓸한 생각이 들게 됩니다. 시청률을 위해 죽음까지 쇼비지니스로 활용하는 미디어들,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무슨짓이든 하는 인터넷 스타들, 더러움을 감추고 선량한 이미지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사설 채널들 등등.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는 2002년 자신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통해 미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이 단순히 개인의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잘못된 총기 정책과 폭력성을 부추기는 뉴스와 티비쇼 때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발현된 폭력성은 다시 티비를 통해 전파되어 대중들에게 공포를 학습시키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으로 대립시키고자 한다고 말이죠.
시청률을 위해 머레이의 끔찍한 죽음을 끝까지 방송하는 방송사와 그런 자극적인 방송을 이슈화하고 반복 재생하는 다른 방송사들의 만행을 통해 “과연 미디어는 역할은 진실을 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보를 전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무슨짓이든 하는가? 그리고 이런 자극들은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좋은 영화는 항상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영화 <기생충>이 칸느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고 <조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어찌보면 현재 우리 주변에 만연한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빈익빈 부익부. 그리고 계층간의 갈등.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지옥도를 만들고 있는 것은 민족간, 이념간, 종교간의 대립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질투하고 좌절하며 불신하게 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개인과 개인간의 갈등 문제라고 말이죠.






아마도 호불호가 크게 갈리겠지만 <조커>는 단순히 코믹스에 기반한 오락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문제를 다룬 예술영화로써 보아야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영화입니다. 시대적 화두를 담은 명작의 탄생을 절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 by 김광혁 객원에디터
제목  조커(Joker, 2019)
감독  토드 필립스 
출연  호아킨 피닉스, 로버트 드 니로, 재지 비츠
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IMDb 9.3 로튼토마토 69% 에디터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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