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트 랭리 국가역사유적지. 랭리 요새는 1827년에 허드슨 베이 회사(HBC)의 모피 및 농수산물 교역소로 설립되었다.
(캐나다) ■ 지난 10월 초에 아들 내외의 주선으로 브리티시콜럼비아(BC) 주 노스 밴쿠버(North Vancouver)의 랭리 시에 있는 "포트 랭리 국가사적지"(Fort Langley National Historic Site)를 방문했다.
랭리 요새는 허드슨 베이 회사(Hudson Bay Company, HBC)의 모피 및 농수산물 교역의 거점으로 약 200년 전인 1827년에 설립됐다.
거기서 두 가지 사실이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19세기 당시의 교역조건이었다. 예컨대 캐나다 원주민(퍼스트 내이션스)은 비버(beaver) 5마리를 잡아가면 담요 한 장을 얻었다. 크랜베리 열매를 카누에 가득 실어오면 도끼 두 자루를 받았다. 또 연어 50마리를 갖고 가면 어선망용 로프(rope) 한 다발을 얻었다.
자원봉사자의 설명에 따르면 HBC가 당시로서는 좋은 가격인 35달러로 계산, 원주민에게 후하게 대우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금 잣대로 보면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불공정 거래로 보인다.
또 하나는 BC주가 식민지화 된지 100주년인 1958년에 설립된 가장 큰 건물에 BC주 영국 총독이 기거하던 숙소와 사무실 그리고 치프 댄 조지(Chief Dan George, 1899~1981)의 유품 등의 전시였다. 댄 조지 추장은 캐나다의 영화 및 텔레비전 배우, 시인, 자서전 작가다. 밴쿠버에서 태어나고 사망한 원주민 출신이다.
▲ 포트 랭리 사적지 내 가장 큰 건물. 내부에는 BC주 영국 총독이 거처하던 숙소 및 사무실과 전시실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그가 1970년 영화 "리틀 빅 맨"(Little Big Man)에서 현명하고 철학적인 노인 '올드 롯지 스킨스'를 연기할 때 입었던 화려한 추장복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으로 캐나다 원주민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또 "무법자 조시 웰즈"(The Outlaw Josey Wales, 1976)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 댄 조지 추장이 1970년 영화 "리틀 빅 맨"(Little Big Man)에서 현명하고 철학적인 노인 '올드 롯지 스킨스'를 연기할 때 입었던 화려한 추장복이 진열돼 있다. 댄 조지 추장은 연기 활동 외에도 뛰어난 글쓰기와 시로 유명했으며, 원주민 공동체의 연설가이자 영적 지도자였다. 그가 표현한 원주민 문화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계승되어 미래 세대에게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과 원주민 공동체의 권리 보호 및 존중의 중요성에 대해 큰 영향을 미치고 영감을 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원주민 배우가 떠오른다. 지난 9월1일 73세로 타계한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 1952~2025)이다. 그는 1990년 케빈 코스트너 감독·주연의 "늑대와 춤을"(Dances with Wolves)에서 수 족(Sioux)의 현자(賢者) '발로 차는 새'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온타리오 주 오네이다 족(Oneida) 출신이다.
■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박해와 인권 유린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5월28일 BC주의 캠루프스 원주민 기숙학교(Kamloops Indian Residential School) 부지에서 어린이 유해 215구가 발견되면서 기숙학교의 존재와 운영자들의 만행이 천하에 드러났다. 이 학교는 1890년부터 1969년까지 현지 정부를 대신해 가톨릭교회가 운영했다가 1978년 영구 폐쇄됐다.
▲ 요새 내 가장 큰 건물에 전시돼 있는 '메티스(Metis)' 관련 그림. 메티스는 유럽인과 원주민 혼혈인을 말한다. 캐나다는 19세기에 인디언과 이누이트족, 유럽인과 원주민 혼혈인인 메티스(Metis) 아동들을 격리해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하고, 가톨릭 교회를 위시한 기독교 단체들에게 운영을 맡겼다. 명분은 백인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한 언어 및 문화 교육이라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원주민 언어사용을 강제로 금지하는 등 문화말살 정책을 펼쳤고, 열악하고 엄격한 훈육 아래 육체적·정신적 학대와 성폭력 등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
당시 15만 명의 원주민 아동이 139개 원주민 기숙학교에 강제로 보내졌는데, 성인이 될 때까지 귀향할 수 없었고, 부모들도 누가 언제 어디로 왜 데려갔는지 알 수 없었다.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는 이중 가장 큰 곳으로 약 500명의 학생을 수용했다.
얼마 뒤엔 그 세 배가 넘는 751구의 아동 유해가 사스캐츄원 주에 있는 매리벌(Marieval) 원주민 기숙학교 터에서 발견됐다. 곧 이어 BC주 크랜브룩(Cranbrook) 근처에 있는 옛 세인트 유진 선교학교 부지에서 마찬가지로 묘비나 표식이 없는 무덤 182기가 발견되었다. 이 역시 이곳에서 교육받던 7~15세 원주민 어린이들의 집단무덤으로 추정됐다. 또 BC주 페넬라쿠트 섬에 있던 쿠퍼 섬 원주민 공업학교(Kuper Island Indian Industrial School) 터에서도 160기의 무덤이 나왔다.
이렇게 2021년 5월부터 몇 주 사이에 캐나다 BC주, 사스캐추원 주 등의 원주민 기숙학교 터 4곳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3~16세 원주민 아동 유해가 1,300여 구나 발견된 것이다
■ 지난 2015년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ttees)는 7년간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를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원주민 학생 4,100명이 영양실조, 질병, 학대 등으로 숨지거나 실종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정부의 문화적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종족 학살)"라고 규정했다. 캐나다 의회는 반성과 교육을 위해 매년 9월30일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추념일"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캐나다 기숙 학교의 원주민 아동 학살 참사는 20년 넘게 논란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가톨릭교회는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가, 2021년 원주민 아동 유해가 쏟아져나오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우 고통스럽다”는 심경을 밝혔으며, 그해 4월 바티칸을 찾아온 캐나다 3대 원주민 대표단(퍼스트네이션스, 메티스, 이누이트)에게 “기숙 학교에 관련된 교인들의 개탄스러운 행동에 깊은 슬픔과 수치를 느낀다”고 공식 사과했다. 교황은 2022년 7월24일 캐나다 앨버타 주 에드먼톤을 방문하여 원주민과 화해하기 위한 '참회와 속죄의 순례(penitential pilgrimage)'를 시행했다.
■ 쇼니 족(Shawnee)의 지도자로 캐나다를 수호한 애국자였던 실존인물 테쿰세(Tecumseh, 1768~1813)가 1810년 8월12일 인디애나 주지사 윌리엄 해리슨에게 했던 연설문은 많은 울림을 주는 명문이다. 그는 전사로서 통찰력있는 추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논리적이고 유창한 연설가였고, 백인 관료들과의 회의에서 쇼니족을 대표하여 원주민의 자결권을 지키려 노력한 운동가이며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혁명가이자 정치인’이었다. 여기 그 일부를 소개한다.
▲ 테쿰세(1768~1813) <출처: 위키피디아>. 그가 1810년 8월12일 인디애나 주지사 윌리엄 해리슨에게 한 연설문은 명문이다.
“… 지난 모든 세대와 교통하는 내 마음속의 존재가 내게 말한다. 옛날에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 대륙에 백인은 없었다. 이 땅은 같은 부모의 자손이며 그들을 만든 위대한 영(靈)이 이 땅을 지키고 뛰어다니며 이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마시고, 온 땅을 같은 종족으로 채우라고 여기에 데려다 놓은 인디언들에게 속한 땅이다. 우리는 행복한 종족이었다. 그러나 결코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우리 땅을 잠식해 오는 백인들에 의해 불행해지고 말았다…"
역사와 현실 앞에서 인간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낀다. 진실은 위선을 걷어내고 반드시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