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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입맛에 맞는 ‘손타쿠’ 방송, 표현의 자유가 위태롭다

2019-10-04 0
‘평화의 소녀상’ 문제로 중단됐던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의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전시장 문에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 놓았다. [사진 하라 치에코]
‘평화의 소녀상’ 문제로 중단됐던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의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전시장 문에 포스트잇을 가득 붙여 놓았다. [사진 하라 치에코]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일본의 국제예술제 아이치(愛知)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로 중단됐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10월 다시 문을 연다. 이 기획전은 원래 8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전시될 예정이었다. 전시 중단은 한·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하는 시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상징적인 사건처럼 부각됐다.
 




일 방송, 정부가 원하는 쪽에 맞춰

 
정권에 비판적인 영화도 드물어

 
한국 언론 자유 역사는 다이내믹
 
 
‘평화의 소녀상’ 문제로 중단됐던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 재개 다행

 
나고야TV 소녀상 작가 인터뷰도









그런데 이것은 한·일 관계뿐만 아닌 표현의 자유를 못 지킨 심각한 문제이기도 했다. ‘평화의 소녀상’만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그 외에도 ‘표현의 부자유전’에 전시됐던 다른 작품들도 못 보게 된 것이다. 검열 등으로 인해 표현의 기회를 빼앗긴 작품을 모아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생각하자는 기획전이었는데 그 전시장은 개막 3일 만에 폐쇄됐다.
 




최근 아이치트리엔날레 폐막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시민들은 닫혀 버린 전시장 문에 “다시 보고 싶어요!” 등 마음을 담은 포스트잇 메시지를 붙이고 있었다. 아이치현 현지 방송국인 나고야(名古屋)TV 기자와 촬영팀은 추석 전에 한국에 왔다. ‘평화의 소녀상’ 작가인 김서경·김운성 부부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였다.
 






 
아베 총리 의혹 사건 때 눈치 보는 보도
 
 


나고야TV 기자는 나의 아사히신문 동기다. 이 방송은 TV아사히 계열이었기 때문에 아사히신문에서 파견 나간 것이다. 몇 달 전에는 개인적으로 한국에 놀러 와서 서울 동대문에서 같이 쇼핑하고 포장마차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기도 했던 친구다. 그가 “소녀상 작가와 어렵게 인터뷰할 수 있게 됐는데 통역을 맡아 주면 좋겠다”고 연락해 온 것이다.
 




인터뷰가 잡힌 날짜는 추석 연휴 직전이었다. 나는 원래 이때 일본에 가기 위해 항공권을 샀는데 고민이었다. 그런데 인터뷰 주제가 ‘표현의 자유’여서 이건 글 쓰는 일을 하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티켓을 버리고, 인터뷰를 돕기로 했다.
 




최근 일본 방송국들은 한국의 반일현상을 전달하고 일본의 혐한을 부추기는 데 바빠 아이치트리엔날레 문제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자는 관점에서 제대로 보도하는 방송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나의 동기는 “도쿄의 방송국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기가 쉽지 않다. 나고야TV는 지방 방송국이기도 하고 아이치트리엔날레의 현장이기도 해서 그나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위안부 관련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아사히신문에 9년 근무했지만 정부의 직접적인 압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방송국은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압력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알아서 정부가 원하는 쪽에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KBS나 MBC 등 공영방송의 보도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걸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 봤다. 프로듀서나 기자들이 개입에 항의하고 그것 때문에 해고된 사실에 놀랐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얌전히 따르는데 한국은 민주화를 거쳐 언론의 자유를 쟁취한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다이내믹하다.
 




‘손타쿠(忖度)’라는 말은 일본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다. 원래 있는 말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자주 쓰는 말이 되었다. 사전적인 의미는 ‘남의 마음이나 생각을 헤아리다’는 뜻이다.
 




2017년에는 이 ‘손타쿠’라는 말이 유행어였다. 당시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 문제’라고 불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관련 의혹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아베 총리의 공사혼동으로 보이는 부정 의혹이었다. 아베 총리나 부인 아키에(昭恵) 여사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의향을 주변에서 헤아려서 움직였다는 뜻으로 ‘손타쿠’라는 말이 갑자기 자주 쓰이는 말이 됐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대부분 방송국도 ‘손타쿠’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반일이나 혐한 보도 등 아베 정권이 좋아할 만한 내용을 손타쿠해서 방송하는 것이다. 물론 시청률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아베 정권이 싫어할 만한 보도에 소극적인 건 사실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동기인 내 친구는 과감하게 인터뷰하러 온 것이다. 김서경·김운성 부부는 나고야TV팀을 따뜻하게 맞이해 줬다. 열정이 넘치는 인터뷰는 3시간 넘게 진행됐다. 통역자로서는 집중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두 작가의 말을 일본에 전달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며 했다. 지난 9월 25일 작가 부부 인터뷰가 방송됐다. 전국 뉴스가 아니었던 건 아쉽지만, “표현자의 마음을 잘 전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가 부부의 말을 들어보니까 ‘평화의 소녀상’이 탄생한 배경에는 일본 정부가 있었다. 그들이 처음 주문받은 것은 비석의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2011년 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수요시위’가 1000회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만드는 비석이었다. 그런데 그 비석을 만들기도 전에 일본 정부가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우리 땅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 비석을 만든다는데, 어째서 일본 정부가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작가 부부는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피해자는 지금은 할머니이지만 피해를 당한 당시는 소녀였거나 젊은 여성이 많았다. 그 피해의 비참함을 전하기 위해 소녀상이 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압력이 없었다면 비석만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소녀상이 늘어나는 계기도 일본 정부가 제공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다. 이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이전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로서는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더는 피해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합의의 핵심은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었을 텐데 그 직후에 소녀상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것이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이 아니라는 것이 금방 들켜버렸다.
 

작가 부부는 소녀상에 평화의 바람도 담았다. 일본에서 비슷한 존재를 생각해 보면 히로시마(広島)의 ‘원폭 돔’이 아닐까. 원자폭탄의 피해의 비참함을 전하면서 평화를 바라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원폭을 투하한 미국이 “원폭 돔을 철거했으면 한다”고 하면 그걸 일본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녀상에 대해서는 작가 부부의 의도와 달리 반일의 상징처럼 보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그 실물을 본 적도 없는데 보도를 통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소녀상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고 작가가 어떤 뜻을 담았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작가 부부도 “비판도 포함해서 일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고 한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시가 상영을 못 하게 하려고 했던 세월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안해룡 감독은 “부산영화제는 경비를 강화해서 예정대로 상영했다. 이번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도 협박 같은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고 하지만, 경비를 강화하는 쪽으로 해야 했다. 너무 쉽게 전시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소녀상’ 작가 의도와 달리 반일 상징 돼
 






일본에서는 올해 여름 ‘신문기자’라는 영화가 화제가 됐다. 한국 배우 심은경이 주인공 신문기자를 연기했다. 원작은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가 쓴 논픽션이다. 모치즈키 기자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관방장관 기자회견 때 용감하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 등으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일본 배우가 해도 될 만한데 왜 한국 배우가 그 역할을 맡았을까. 추측이지만 현 정권을 비판하는 역할을 일본 배우들 또는 소속사가 피한 것은 아닐까.
 




영화 ‘신문기자’에 나오는 몇 개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심에는 모리토모·가케 문제가 있다. 이 영화가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에서는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 자체가 드물지만 현 정권에 비판적인 영화는 더더욱 보기 드물다. 정부가 영화 제작이나 상영에 개입한다기보다는 큰 영화사들은 스스로 현 정권이 싫어할 만한 영화는 안 만드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이 소재를 골랐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문부과학성은 아이치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을 교부하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가 재개하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지만, 일본의 표현의 자유는 아주 위험한 상태다. 얌전한 일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다이내믹한 이웃 나라가 부럽기도 하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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