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로 한국이 탄핵 정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프랑스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야권의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이 부여한 임기를 완수하겠다"며 하야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지난 4일 하원의 총리 불신임안 가결로 62년 만에 정부가 붕괴한 것과 관련해서도 "극우·극좌를 배제한 연정으로 후임 총리 임명 및 정부 구성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를 두고 "향후 극심한 정국 혼란을 예고하는 발언"이란 평가가 나온다.
BBC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5일오후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제1당인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을 포함한 야권의 하야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여러분(국민)이 민주적으로 위임해 준 권한은 5년이며, 나는 끝까지 그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것"이라며 2027년 임기 종료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나의 책임은 국가의 연속성, 우리 기관의 적절한 기능, 국가의 독립성, 그리고 여러분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은 이날 공화당 출신인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자신과 정부 각료 전원의 사퇴서를 제출한 직후 나왔다. 전날 바르니에 총리는 내년도 예산 관련 법안의 의회 패싱으로 하원의 불신임을 받고 취임 석 달 만에 총리직에서 내려오게 됐다. 이후 하원 1당인 NFP를 중심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자진 사퇴와 조기 대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모든 의회 그룹에 양보했음에도 정부가 불신임받았다"며 "극우와 극좌가 반(反)공화주의 전선을 만들어 예산안과 프랑스 정부를 무너뜨리기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극우 국민연합(RN)이 정치적으로 정반대 성향을 가진 NFP의 불신임안에 동의한 점을 거론하며 "그들은 자신을 뽑은 유권자들을 모욕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RN이 불신임안에 찬성한 것에 대해 "오직 한 가지,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날을 세웠다. 차기 대선을 겨냥한 정치공학적 행동이란 주장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24일 프랑스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한·프랑스 정상회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크롱 대통령은 또 며칠 내로 후임 총리를 임명하겠다며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에게 (총리를) 맡겨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에 참여할 수 있거나 최소한 정부를 불신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정치 세력들로 이 정부는 구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이 총리직 설득을 위해 중도 우파 성향의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민주운동당 대표와 오찬을 가졌다고 전했다. NFP와 RN을 제외하고 중도 우파 진영과 국정을 꾸려나가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좌파 총리를 요구하는 NFP와 조기 대선을 원하는 RN이 과반 의석으로 불신임 카드를 또다시 꺼내 들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크롱 측은 (NFP 내) 온건 좌파 세력을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로부터 분리해 세력을 규합하려 했지만 실패해 왔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총리 불신임으로 내년도 예산안도 자동 무산된 상태다. 하지만 이른바 정부 '셧다운' 사태로까진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공공서비스를 위해 12월 중순 이전에 (예산 관련) 특별법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특별법은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공공 행정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한 긴급 법안으로 전년도 예산을 바탕으로 집행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골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 과반이 이 특별법을 채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협조를 당부했다.
한편 미 외교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현재 한국의 (정치) 문제는 프랑스의 것과 매우 비슷하다"며 "프랑스의 불안정성이 유럽 등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한국의 불안정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ck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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