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기업들이 꽉 잡은 세계 전기차 시장에 새로운 도전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도 1위 철강 회사 JSW그룹이 독립 브랜드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부펀드를 이용해 내년을 목표로 전기차 출시를 준비 중이다.
사잔 진달 JSW그룹 회장은 2일 보도된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우리의 구상은 중국 전기차의 판매 전초 기지가 되지 않는 것”이라며 “인도에서 생산해, 인도에서 부가가치를 더하고, 인도에서 판매하는 전기차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JSW그룹은 올해 3월 상하이자동차와 함께 15억 달러(2조원) 규모의 전기차 합작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중국 상하이자동차 산하 브랜드 MG의 전기차를 양사가 함께 생산·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나아가 JSW는 인도 중서부 지역 아우랑가바드에 자체 브랜드 전기차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32억 달러(4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업계에선 JSW가 타타자동차, 올라일렉트릭, 현대차그룹 등과 경쟁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진달 회장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유럽과 중국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전통 우방국인 인도 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이익을 볼 것”이라고 낙관했다.
K부품 장착되는 사우디 전기차
운용자산 1300조원 규모의 사우디 국부펀드가 세운 전기차 회사 시어(Ceer)는 최근 크로아티아의 차량 구동 기술 기업인 리막테크놀로지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한국 내 부품 생산처를 지정하는 등 양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가 운영하는 시어(Ceer)의 전기차 가상 이미지. 사진 시어 인스타그램
4일 현대트랜시스에 따르면, 현대트랜시스는 시어에 공급할 인버터(전류 변환 장치) 보호 장치인 ‘미드케이스’와 모터의 회전·방향·속도를 제어하는 ‘하우징 액추에이터’의 생산자로 한국 SM벡셀을 지정했다. 사업 규모는 145억원이다. 해당 제품들은 현대트랜시스의 추가 공정을 거쳐 시어 차량에 탑재될 예정이다. 현대트랜시스는 지난 6월 시어와 10년간 3조원 규모의 전기차 구동 시스템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시어의 2025년 전기차 출시 준비가 순항 중인 상황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연간 50만대의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한다. 수도 리야드의 전기차 보급률을 30%까지 끌어 올리고, 2030년 완공 예정인 네옴시티에선 전기차만 운행하겠단 계획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시어 출범식 때 “우리는 단순히 자동차 브랜드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다”며 “국제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다음 세대에게 일자리와 지속적 성장을 안겨주는 과정의 시작이다”라고 말했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시어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시어는 정부가 주도해 육성하는 기업이란 점에서 중국 전기차 회사들과 유사하다. 저가 공략 등 중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점유율 확보를 노릴 거란 예측이 나온다. 올해 1~8월 기준 세계 전기차 점유율은 중국 비야디(BYD)가 22%로 1위다. 테슬라는 11%로 2위, 현대차·기아는 7위(3.7%)로 집계됐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명예교수(한국자동차산업학회 부회장)는 “사업 초기엔 주요 부품을 사다가 조립해 파는 방식으로 판매량을 늘릴 수는 있어 보인다”면서도 “만약 국부펀드 자금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서 자동차 사업을 하게 된다면, 애프터서비스 등 고객 관리에서 한계에 부딪쳐 성장세도 멈출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전기차 회사 시어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AFP=연합뉴스
이밖에 베트남 1위 기업인 빈그룹의 전기차 회사 빈패스트도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VF3을 대표 모델로 내세워 판매량을 늘려가는 중이다. 올해 2분기 판매량은 1만3172대로 1년 전보다 43% 늘었다. 현대차그룹도 동남아 시장을 겨냥해 말레이시아에 2030년까지 6735억원을 투자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문제는 국내 부품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다. 전기차 산업에 신규 사업자와 추가 투자가 이어지는 만큼, 종전 내연기관 부품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 수 있어서다. 손영욱 한국자동차연구원 대경지역본부장은 “전동화 확산의 파급 효과가 국내 중소 부품사로 이어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업체가 값싼 중국산 부품에 밀려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트랜시스 등의 부품 사업 수주는 극히 일부의 사례라는 얘기다. 손 본부장은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자동차 부품사에 대한 전기차 시대 기술·사업 전환 대책이 구체화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ck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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