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새해 미국 대통령이 될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 첫날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마약이었다. 같은 이유로 멕시코와 캐나다산 모든 제품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엔 마약에 더해 불법 이민 이슈도 포함됐다.
트럼프는 25일 SNS 트루스소셜에 “(내년) 1월 20일, 나의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서류에 서명할 것이며 그 터무니없는 국경 개방도 철회할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와 캐나다가 마약, 특히 펜타닐의 미국 유입을 해결하고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할 때까지 이 관세율을 유지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그러면서 중국이 멕시코 등을 거쳐 미국으로 우회 유입되는 불법 마약의 흐름을 막기 위해 충분히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들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대해 (기존) 추가 관세에 10% 관세를 더 부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미·중 간 마약 이슈의 핵심은 펜타닐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 애비뉴의 소위 ‘좀비랜드’라 불리는 거리가 전 세계 방송을 타면서 미국의 수치가 됐다. 대낮인데도 길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이 넘쳐나고, 허리를 접은 채 비틀거리며 걷거나,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거나, 혼자 끊임없이 무언가 중얼거리고들 있다. 트럼프는 이런 상황의 진원지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펜타닐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대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말기 암 환자처럼 극심한 고통에 직면한 이들에게만 처방된다. 진통 효과는 모르핀의 200배, 헤로인의 50~100배이고 치사량은 2㎎으로 청산가리 치사량의 1%로도 죽음에 이른다.
1960년대 마리화나와 LSD, 1980년대 이후론 코카인이 미국 사회를 휩쓸었다면 2010년대 중반부턴 펜타닐이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갔다. ‘펜타닐 위기(Fentanyl crisis)’란 용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펜타닐이 대유행한 이유는 기성 마약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효력에, 초저가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가성비 갑’ 물질인 것이다. 펜타닐 사업에 3000달러(약 420만원)를 투자하면 150만 달러(약 21억원)를 번다고 한다.
이 펜타닐의 최대 생산국이 중국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 원료 의약품의 40%를 생산한다. 5000개 이상의 제약 기업과 16만 곳 이상의 화학물질 제조·유통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펜타닐은 의료용 진통제로 생산되기 때문에 규정대로 관리만 한다면 생산과 수출 자체는 합법이다.
하지만 여러 ‘어둠의 경로’로 펜타닐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삼합회 등 중국 마약상들은 펜타닐과, 그보다 10배 강력한 서펜타닐, 100배 강력한 카펜타닐 등을 생산해 알리 익스프레스나 알리바바 닷컴 같은 쇼핑몰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팔아댔다. 결제는 비트코인을 활용했다. 미국에서 펜타닐은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란 별명으로 통했다.
급기야 2017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2018년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펜타닐 생산 규제를 요구했다. 중국 측은 ‘미국의 약물 문제에 중국이 무슨 상관이냐’고 책임 공방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듬해 펜타닐류 약물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중국 당국의 압박이 강화되자 마약상들은 우회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펜타닐 완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신 원료물질들을 제3국으로 보내 그곳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대상국은 마약 카르텔로 유명한 멕시코와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었다. 펜타닐을 구성하는 원료들은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원료물질 전부의 유통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이렇게 완성된 펜타닐이 멕시코와 캐나다를 거쳐 지금도 여전히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펜타닐 천국이 되다 보니 코카인과 필로폰 수요가 줄거나 정체되고, 잉여 코카인·필로폰 판매를 위해 마약상들이 한국처럼 경제력 있는 마약 청정지역에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얘기가 나온다. 중국의 화학약품 생산 인프라와 국제 마약상들의 유통망, 더 싸고 강력한 마약을 원하는 미국인들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스리쿠션으로 한국에서도 마약 유통·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펜타닐 문제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간 뜨거운 현안 중 하나였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펜타닐에 대해 중국 제조업체들에 책임을 묻고 중국 정부에도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해 왔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6월 중국 기업 4곳과 중국인 8명을 펜타닐 유통과 관련해 처음으로 기소했다. 기소된 중국 기업과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제품이 펜타닐 제조에 쓰인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판매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100% 비밀 운송 보장’이라는 문구까지 넣어 펜타닐 원료 판매를 홍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기 행정부 때부터 펜타닐을 명분으로 중국을 때리려 한 트럼프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대선 캠페인 때부터 바이든 행정부보다 훨씬 강력한 펜타닐 해결을 약속해왔는데, 이번 발표를 통해 관세를 해결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모양새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ck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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