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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마야, 의료기록 열람 후 ...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소녀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0
[Unsplash @Hush Naidoo Jade Photography]
[Unsplash @Hush Naidoo Jade Photography]
(캐나다) 2023년 3월 30일, 메트로 밴쿠버의 17세 소녀 마야 캐서디(Maya Cassady)는 단 몇 시간 전 읽었던 자신의 의료 기록을 손에 쥔 채 스스로 생을 마쳤다.

졸업을 두 달 앞둔 명예학생이었고, 유럽 유학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가 자유정보법(FOI)을 통해 받아본 정신건강 기록 속의 ‘진단 가설’과 전문 용어들은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이 비극은 이후 캐나다 전역에서 청소년 의료기록 접근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번지고 있다.

한 어머니가 잃어버린 아이를 대신해 시작한 싸움은 의료 시스템과 개인정보 보호체계의 경계에서 답을 찾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마야의 어머니 힐러리 캐서디(Hilary Cassady)는 “기록이 곧바로 딸에게 전달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도 마야는 여기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에게 그날의 ‘한 장짜리 보고서’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은 방아쇠였다.

기록 속 단어들이 만들어낸 치명적 오해
마야가 받아본 의료 기록에는 의사들이 정식 진단이 아닌 ‘가능성’을 적어둔 표현들이 포함돼 있었다. “Axis II traits”, “BD-II”, “chronic dysthymia vs. unspecified depressive disorder” 같은 용어들은 설명 없이 기록돼 있었다.

히얼리 캐서디는 마야의 휴대전화를 확인하며 딸이 마지막 순간까지 기록 속 용어들을 검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색창에는 “Is 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 lifelong?” 같은 문장과 함께, ‘치료 불가능(untreatable)’이라는 단어가 떠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용어들이 의료진과 보호자 사이에서 단 한 번도 공유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입원할 때마다 의료진과 상담을 기록할 정도로 딸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정작 그 어떤 자리에서도 ‘경계선 성격장애 가능성’, ‘만성 기분장애’, ‘2형 양극성 장애 가설’ 같은 용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의료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는 진단 가설이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문서’로 옮겨가는 순간, 오해와 불안은 헤어나올 수 없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FOI(자유정보법)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병원에서 배웠다”
마야가 FOI 제도를 알게 된 것도 입원 치료 중이었다고 캐서디는 회상한다.
“15살 때 처음 입원했을 때, 다른 청소년 환자들이 FOI 절차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B.C.에서는 12세가 되면 법적 보호자 동의 없이 자신의 의료 기록을 직접 요청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미성년자에게 ‘해석 없는 기록 전달’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기록은 마야가 사망 두 달 전, 해열제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을 찾은 뒤 4일간 입원했던 기록이었다. 담당 정신과 의사는 당시를 “충동적 시도”로 평가했으나, FOI 절차에 따라 그가 해당 기록이 청소년 본인에게 직접 전달될 것이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의료진조차 “그녀가 FOI를 요청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밝힌 점은 시스템의 허점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청소년 의료 기록 공개, ‘권리’와 ‘안전’ 사이의 긴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청소년의 권리와 보호 사이에서 극도로 어려운 균형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캐나다정신건강협회(CMHA) B.C. 지부의 CEO 조니 모리스는 “자신의 의료 정보에 접근할 권리는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그 기록 속의 내용이 의료진과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상태라면 위험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UBC 신경윤리학 교수 주디 일레스는,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정작 청소년들이 의료진과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FOI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청소년들이 공식적인 치료 과정이 아닌 ‘외부 통로’를 이용해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것은 오히려 의료체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가 갖고 있는 구조적 맹점
B.C. 정보·프라이버시위원회(OIPC)는 법적으로 미성년자의 FOI 요청을 연령으로 제한하지 않으며, ‘의료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 해 수천 건의 의료기록 FOI가 접수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모든 요청을 의료진이 직접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다.

규정상, 정보공개는 “신체적·정신적으로 즉각적이고 심각한 피해가 예상될 경우” 제한하거나 보호자·의료진과 함께 열람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요청을 ‘위험 요청’으로 분류할지 기준은 모호하며, 건별로 판단도 일관되지 않다.

그리고 그 ‘비일관성’이 마야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마야의 어머니 힐러리는 지난 2년 동안 B.C. 주정부, 의원, 기관을 수없이 찾아다니며 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그녀는 “진단명 하나가 얼마나 무거운 의미를 가지는지, 그 용어들이 청소년에게 어떤 공포로 다가올 수 있는지 의료 시스템이 너무 안이하게 본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의료 정보 문제가 아니라, 극도로 취약한 상태의 청소년에게 ‘해석을 동반하지 않은 진단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가 위험한 시스템 설계라는 주장이다.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 그리고 남겨진 아이들
마야는 쌍둥이로 태어났고, 스포츠와 여행, 글쓰기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기던 학생이었다. 네덜란드의 한 대학에 합격해 유럽법을 공부하겠다며 가족과 미래 계획을 나누던 시기였다. 가족에게 남은 상처는 깊다. 쌍둥이 언니의 마음속에도 깊은 감정적 균열이 남았다.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이번 사건은 청소년 정신건강 위기와 FOI 제도의 한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이 진단 과정과 고민을 기록하며, 그 과정 자체를 환자와 공유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록 속 어떤 단어도 환자에게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한 기록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캐서디 가족은 ‘Maya Veronica Cassady Mental Health Wellness Fund’를 설립해, 취약한 청소년들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야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은 단순하다. 어느 아이도 마야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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