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2025년 연말, 고물가와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캐나다인들의 크리스마스 쇼핑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23일 비자 캐나다(Visa Canada)가 발표한 최신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연말 쇼핑 지출은 지난해보다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온라인 쇼핑의 강세 속에서도 전체 결제액의 88%가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캐나다인들이 다시 '몰(Mall)'로 쏟아져 나오며 전통적인 방식의 막판 쇼핑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쇼핑객 10명 중 9명은 ‘매장’으로… 오프라인의 화려한 부활
비자 캐나다의 데이터에 따르면 11월 1일 이후 발생한 전체 연말 결제액 중 오프라인 매장 비중은 88%에 달했으며, 온라인 쇼핑은 12%에 그쳤다. 이는 팬데믹 이후 가속화되었던 디지털 전환 추세 속에서도, 연말 특유의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상품을 직접 확인하려는 '경험 소비' 욕구가 강력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오타와의 칼링우드 쇼핑센터에서 만난 시민들은 크리스마스를 단 하루 앞두고 선물을 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한 쇼핑객은 "매년 마지막 날까지 미루다 뛰어다니는 게 일상이 됐다"며 웃어 보였고, 또 다른 시민은 "더 좋은 할인 혜택을 기다리다 보니 결국 이브 전날까지 오게 됐다"고 전했다.
지출 증가의 이면: 인플레이션과 SNS가 만든 ‘피어 프레셔’
겉으로 보이는 지출 증가는 캐나다 경제의 활력보다는 '비용 상승'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유통 전문가 브루스 와인더(Bruce Winder)는 이번 지출 증가의 핵심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인플레이션의 영향: 동일한 물건을 사더라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지출해야 하는 절대 금액이 늘어났다. 즉, 소비량은 비슷하거나 줄었어도 '금액'은 늘어난 착시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AI: 기업들이 AI를 활용해 정교한 맞춤형 할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소비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혹은 더 많이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소셜 미디어와 주변 눈치: SNS를 통해 화려한 연말 분위기와 선물 인증샷이 공유되면서, 경제적 부담 속에서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심리적 압박이 소비를 부추겼다.
의류와 생활용품이 주도한 성장… ‘실속형 선물’ 대세
품목별로는 의류 및 액세서리 부문이 전년 대비 10%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전체 지출을 견인했다. 또한, 여러 품목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종합 쇼핑몰(One-stop shops) 지출도 9% 증가했다. 이는 소비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보다 한곳에서 모든 쇼핑을 해결하려는 '효율적 소비' 패턴을 보였음을 시사한다. 오타와의 주요 쇼핑몰들은 마지막까지 몰려드는 인파를 감당하기 위해 운영 시간을 연장하며 막판 대목 잡기에 나섰다.
늘어난 지출 뒤에 숨은 ‘부채의 그림자’를 경계해야
4.4%라는 지출 증가율은 언뜻 보기에 소비 심리 회복으로 읽힐 수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려스러운 대목이 많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등 떠밀리듯 늘어난 지출과 SNS가 만든 '보여주기식 소비'는 결국 내년 초 가계 부채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시즌 캐나다인들이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한 것은 단순히 '전통'으로의 회귀라기보다, 배송비 부담을 줄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으려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연말 소비 열기가 '반짝 특수'에 그치지 않도록 가계 건전성을 점검하고, 시민들은 화려한 마케팅 뒤에 숨은 자신의 실제 지불 능력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진정한 연말의 가치는 선물 꾸러미의 크기가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나누는 마음의 여유에 있기 때문이다.
토론토중앙일보 (news@koe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