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출신 영주권자 산제이 구릉은 한국 정착 20년 만에 영주권을 받았다. 사진은 산제이가 경기 수원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종호 기자 [출처:중앙일보]
(한국)
4년 뒤 국내 체류외국인은 300만명으로 전망된다. 인구 절벽에 따른 이민자 증가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력 확보 차원을 넘어 사회통합까지 고려한 섬세한 이민 정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이미 도래한 ‘이민시대’ 현장의 내외국인을 두루 만나 서로 공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했다.
네팔 출신인 산제이 구릉(47·Sanjay Grung)과 안몰 가르카(38·Anmol khadaka)는 한국에서 대학을 같이 다녔다. 산제이는 한국에 정착해 20년 만인 2024년 영주권을 받았다. 안몰은 대학 졸업 후 캐나다로 떠나 5년 만에 영주권, 다시 3년 뒤엔 시민권까지 얻었다. 두 나라의 비자 정책이 얼마나 다른지, 두 사람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산제이는 2004년 11월 기술연수생(D-3) 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 포천의 냉면 공장에서 일했다. 3년을 일한 뒤 성실근로자로 초청을 받아 2007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승급했다. 함께 일하던 아주머니들에게 한국어를 배워 소통에도 지장이 없었다.
이후 E-9에서 다시 일반연수(D-4) 비자로 바꿔 2010년부터 총신대 한국어학당에서 18개월 간 한국어를 배웠다. 이어 D-2(유학생) 비자로 2011년 충남의 한 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이주민 사회통합프로그램 최고 단계(5단계)도 이수했다. 2018년엔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뒤 2019년 1월 수원외국인복지센터 상담활동가로 취업하며 우수인재 점수제(F-2-7) 비자를 받았다. 이 비자를 소지한 이주민이 3년 간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을 유지하며 한국에 체류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소득이 문제였다. 산제이가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GNI의 2배(약 9450만원)를 채우기엔 센터 월급이 턱 없이 부족했다. 수원의 한 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로 일하는 등 ‘투잡’까지 뛰며 돈을 번 끝에 한국 이주 20년 만인 2024년 10월 25일 영주권(F-5) 비자를 받았다. 산제이는 “석사 공부도 하고 성실하게 한국에 거주했는데, 소득이 낮아 영주권을 받지 못한 시간들이 너무 서글프다”고 했다.
김주원 기자 [출처:중앙일보] “엄격한 이민·비자 정책 때문에 한국 떠났다”
안몰은 2011년 9월 한국에서 신학대에 입학해 2015년 8월 졸업한 뒤 이듬해 1월 캐나다 토론토의 한 대학원에 진학했다. 2018년 4월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곧장 3년 기한의 ‘졸업 후 취업허가’ 비자를 발급 받아 캐나다에 간 지 5년 만인 2021년 영주권을 얻었고, 2024년엔 캐나다 시민권까지 획득했다.
캐나다 영주권을 획득하려면 CEC(Canadian Experience Class) 프로그램을 밟아야 한다. 2021년 당시 기준 점수는 480점으로, 감독자·관리자 또는 고숙련 직업군에서 1년 이상의 경력이 있고 어학 성적인 아이엘츠(IELTS) 점수가 있으면 채울 수 있었다. 안몰은 “시민권을 딸 때 한국과 달리 소득 수준은 관계가 없고, 심지어 실직 상태여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영주권 심사에선 캐나다 정부가 정한 직업군 분류 코드(National Occupational Class)만 있으면 된다.
그가 한국을 떠난 이유는 이민과 비자 정책이 매우 엄격하기 때문이었다. 안몰은 현재 목사 겸 가구 기업 이케아(IKEA) 매니저로 일하면서 심리학을 더 공부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선 영주권을 따내기 어렵고, 충분한 은행 잔고를 입증해야 하며 매년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공장 외 다른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배우자도 못 데려와 가족과 생이별하는 힘든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에선 내 기술과 배움을 활용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며 “지난해부터 유학생 영주권 취득 절차를 강화해 새로 오는 이민자는 전보다 요건이 까다로워지긴 했다”고 했다.
산제이 구릉의 대학 동기인 안몰 가르까(38·Anmol khadaka)는 한국 대학을 졸업한 뒤 2016년 캐나다에 정착해 5년 만에 영주권을 따냈고, 영주권 취득 3년 만인 지난 2024년 시민권을 승인받았다. 사진 안몰 가르까 한국인도 충족하기 어려운 영주권 기준
한국 영주권 취득 조건은 “내국인도 충족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까다롭다. 한국 정주(定住)로 가는 길을 거친 비포장길에 빗대기도 한다. 현행 비자 체계를 전면 개편하지 않는 한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이민자를 포용한다는 가치는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민자들의 한국 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산제이를 사무치게 했던 소득 조건이다. 일반 영주권을 얻으려면 내국인 평균의 2배 소득에 체류 기간도 최소 5년 이상이어야 한다. 반면 캐나다는 영주권 신청시 충족해야 하는 체류기간 조건이 없고 소득과 관계없이 합법적 범주에 속하는 직업만 있으면 된다. 저스틴 심 캐나다 공인이민컨설턴트는 “캐나다 같은 나라에선 고학력 고소득의 이민자만 수용하는 게 아니다. 필요한 인력, 필요한 사람을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 받아 들인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고 했다.
“비자 사다리 현실화해야…순환형→정주형으로”
전문가들은 이민자 체류 자격 관리, 즉 ‘비자 사다리’ 현실화가 이민정책 백년대계를 수립하는 필수 조건이라고 말한다. 법무부 이민정책연구원의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보고서에서 이민자 관련 정책 대상의 확대·축소 여부를 물어 이를 점수화 한 항목에서 ▶사회 적응 및 정착 지원 등 통합정책 제공(58.4점) ▶취업 등 일자리 지원(57.1점) ▶입국 및 체류(비자) 관리(52.9점) 정책은 대상을 확대하자는 응답자 비율이 높아 점수가 상위권이었다. 반면 ▶사회보험 제공(50.1점) ▶의료급여 등 공공부조 제공(47.8점) ▶정치참여(44.4점)의 경우 정책 대상을 제한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박경민 기자 [출처:중앙일보] 비자 확대는 특히 이민 2·3세 등 미래 세대 통합 문제와도 직결된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안정적 체류 자격을 얻어 한국 언어와 문화를 체득해야 장기적으로 통합지수를 높일 수 있어서다. 실제 산제이의 아들 러브 선(23)은 13살에 한국에 와서 아버지와의 관계 형성 뿐 아니라 한국살이 적응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18년 한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생 앨리슨(Alison)이 여느 한국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자란 것과 달리 러브 선은 정체성 고민과 적응 문제로 초·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캐나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류이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한국이민정책학회 소속)은 “이민 선진국들이 마음씨가 좋은 나라라 비자 정책을 정주형으로 바꾼 게 아니다. 노동력으로 쓴 뒤 되돌려 보내는 걸 되풀이하는 대신, ‘사람’을 받아들여 이민자들이 정주할 것이란 가정 아래 정책 설계를 해야 더 나은 이민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민자 사회통합지수, 어떻게 조사했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이민정책연구원이 2024년 8월 19일~9월 20일 전국 17개 시·도 다문화도시협의회 소속 22개 기초자치단체의 만 19세 이상 내국인 6000명과 이민자(국내 장기체류 외국인·5년 이내 귀화자) 6000명을 대상으로 대면면접조사 방식과 Open URL 활용 조사 방식을 병행해 진행했다. 표본은 전국 이민자 모집단 약 185만명의 체류 자격별 특성을 반영하여 설계 한 후 지역·성·연령별을 층화하여 추출했다. 목표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6%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