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캐나다 연방 경찰(RCMP) 요원 400여 명이 지난해 각종 비위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사실은 단순한 통계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국가 최고의 법 집행 기관이자 캐나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직 내부에서 성비위와 직권 남용, 심지어 형법 위반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는 현상은 조직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강 해이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오랜 시간 누적된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내부에 뿌리 깊은 ‘독성 조직 문화’와 변화의 지체
가장 먼저 지목되는 원인은 RCMP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다.
1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RCMP는 군대식 상명하복 체계를 유지해 왔는데, 이는 효율적인 지휘 체계를 보장하는 반면 내부의 부조리를 은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토양이 되었다. 조직 내부에 깊숙이 박힌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적 문화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고, 그 결과 성희롱이나 보복 행위 같은 고질적인 병폐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비위 보고가 늘어난 것을 두고 무관용 원칙에 따른 투명성 확보의 결과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문제가 수면 아래에 숨겨져 있었는지를 방증한다.
만성적 인력난이 불러온 ‘번아웃’과 관리 부재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요원들의 심리적 고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현재 RCMP는 광활한 캐나다 전역의 치안을 담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는 요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노출되기 쉬우며, 이러한 정신적 한계 상태는 현장에서의 냉소적인 태도나 우발적인 직권 남용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특히
전체 비위 사례의 61%가 저연차인 순경급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규 인력에 대한 교육과 정신 건강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디지털 시대, 공인과 개인의 경계 붕괴와 사회적 불신
디지털 환경의 변화 역시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개인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에 익숙한 젊은 세대 요원들이 유입되면서, 공인으로서의 의무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복을 입은 상태에서 부적절한 게시물을 올리거나 온라인상에서 편향된 의견을 드러내는 등의 행위는 조직 전체의 중립성과 신뢰도를 실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기에 경찰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엄격해지면서 일부 요원들 사이에서 형성된 방어적인 동료애, 이른바 '침묵의 벽'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도 조직 쇄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기강 확립을 위한 근본적 체질 개선의 필요성
결국 RCMP의 신뢰 회복은 단순히 비위 요원을 파면하는 사후 처방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조직의 군대식 위계질서를 민주적이고 투명한 전문 경찰 조직으로 탈바꿈시키는 체질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요원들이 본연의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하고 실질적인 심리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캐나다의 상징인 빨간 제복이 다시금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신뢰의 상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마크 카니 정부와 RCMP 지휘부의 근본적인 혁신 의지가 절실한 시점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