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200개 이상의 언어가 교차하는 다문화 도시 토론토에서, 서로의 모국어를 전혀 모르는 남녀가 제3의 언어인 '영어'를 징검다리 삼아 사랑을 키워가는 특별한 사연들이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감동을 주고 있다.
몽골 호스텔서 만난 네덜란드 남자, 일본 여자... 3개 국어 구사하는 가족
레나르트 반 빈(53)과 요코(45) 부부의 인연은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작은 호스텔 이층 침대에서 시작됐다. 네덜란드 출신의 레나르트와 도쿄에서 온 요코는 당시 서로의 언어를 전혀 몰랐지만, 서툰 영어를 매개로 소통을 시작했다. 이후 일본과 호주를 거쳐 토론토 비치 지역에 정착한 이들은 현재 영어, 일본어, 네덜란드어 등 3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두 자녀를 둔 화목한 가정을 꾸렸다. 요코는 "감정이 격해질 때는 여전히 적절한 영어 단어를 찾기 위해 말을 멈춰야 하지만, 그 과정조차 우리 관계의 일부"라고 전했다.
구글 번역기로 시작한 댄스홀의 인연 "말이 안통해도 마음은 통했다"
또 다른 커플인 마르타 로페즈(30, 콜롬비아)와 프셰메크(36, 폴란드)는 토론토의 유명 클럽 '크로커다일 락'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프셰메크의 첫마디는 "나는 영어를 못한다"였지만, 로페즈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구글 번역기를 동원해 대화를 이어갔다. 6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여전히 영어로 소통하며 가끔 서로의 모국어를 배우기도 한다. 로페즈는 "폴란드어 특유의 뉘앙스를 영어로 옮기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가 나를 웃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진심 하나만으로 언어의 장벽은 의미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전문가가 본 '다국어 커플'의 뇌... "감정적 스트레스 땐 모국어 회귀 현상"
토론토 대학교 언어학과의 사피에 모가담 교수는 이들 커플이 겪는 현상을 '맥락 의존적 이중언어 모드'로 설명한다. 모국어는 기억 및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뇌가 자동으로 모국어 단어를 우선적으로 인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가담 교수는 "언어 학습은 단순한 단어 교체가 아니라 문화적 맥락을 협상하는 복잡한 과정"이라며, 제3의 언어로 사랑을 가꾸는 과정이 일반적인 커플보다 훨씬 더 많은 인지적·감정적 노력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200개 언어의 도시 토론토, '번역'이 곧 '사랑'이 되는 곳
토론토의 길거리에서 들리는 수많은 언어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자,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장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 빈 부부와 로페즈 부부의 이야기는 완벽한 문법보다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관계의 본질임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제3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더 깊은 배려를 낳는다. '구글 번역기'와 '서툰 영어'는 결핍의 상징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능동적인 헌신이다. 300만 인구가 모여 사는 토론토에서 진정한 소통은 언어의 유창함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 사이의 침묵을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이들은 증명하고 있다. 발렌타인 데이,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번역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