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순자산이 400만 달러에 달하고 연봉이 20만 달러인 65세 여성 케이트는 스스로를
'치킨 리틀(Chicken Little)'이라 부른다. 이는 서구 전래동화 속 주인공으로, 머리 위로 떨어진 도토리 한 알을 보고 "하늘이 무너진다"며 마을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은 겁쟁이 병아리를 뜻한다. 즉, 객관적으로 안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근거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사로잡혀 불안해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전문가의 재무 설계안은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재무 설계사와 '협업'의 부재, 숫자에 대한 통제권 상실
재무 설계 전문가 앨런 노먼은 케이트의 불안이 '계획과의 단절'에서 온다고 진단한다. 기존의 설계안은 전문가가 정보를 수집해 일방적으로 결과물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노먼은 설계사조차 이해하기 힘든 복합적인 수치의 나열은 고객에게 결코 확신을 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재무 설계는 고객이 직접 시뮬레이션 과정에 참여해 '만약 이렇다면?(What-if)'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학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본인의 비전과 가치관이 소프트웨어에 반영되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비로소 그 계획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보수적 가정, "불안만 키우는 서류상의 숫자들"
케이트의 기존 계획에는 몇 가지 비현실적인 가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케이트는 세후 5만 달러면 충분하다고 했으나, 설계안은 연간 12만 달러를 88세까지 쓰는 것으로 설정했다. 또한 현재 대출금을 갚느라 수익이 나지 않는 임대 부동산의 잠재력을 완전히 무시했다. 시간이 흐르면 인플레이션으로 임대료는 오르고 부채 가치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부동산 상승률을 물가 상승률보다 낮게 잡는 식의 과도한 보수적 가정은 오히려 미래의 세금 부담을 과소평가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낸다.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이 수반되지 않은 보수주의는 은퇴자의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은퇴 자신감을 만드는 4가지 전략, 매년 반복되는 '학습'이 핵심
노먼은 케이트와 같은 자산가들이 평온한 은퇴를 맞이하기 위해 네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설계사와 함께 앉아 변수를 직접 입력해보고 결과의 변화를 학습하는 협업적 접근이다. 둘째, 수입과 지출의 현금 흐름을 항목별로 꼼꼼히 정리해 자신의 숫자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셋째, 너무 비관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은 현실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짜는 타당한 가정의 사용이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을 매년 업데이트하며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과 수정 과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은퇴자는 숫자가 주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숫자가 주는 안도감보다 중요한 것은 '은퇴자의 통제권'
4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쥐고도 불안에 떠는 케이트의 사례는 은퇴 준비가 단순히 '잔고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토론토와 미시사가 등지에서 평생을 아껴 자산을 일군 많은 한인 이민자 부모님들도 정작 은퇴 후 자산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겪곤 한다. 이는 '돈의 액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미래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결과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방식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노먼의 조언처럼, 내 은퇴 설계안이 실제 생활비와 임대 수익 구조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직접 따져보고 이해해야 한다. "계획 자체는 쓸모없을지 몰라도, 계획을 세우는 과정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격언처럼, 매년 자신의 자산을 점검하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행위 자체가 '치킨 리틀'의 불안을 잠재울 가장 강력한 심리적 방어선이 될 것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