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캐나다의 주요 시중은행인 CIBC가 송금 오류로 인해 발생한 34만 3천 달러의 손실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 기각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은 잘못 기입된 계좌 번호로 거액이 입금된 후 예금주가 이를 해외로 빼돌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송금 시 '계좌 번호'와 '예금주 성명'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은행의 주의 의무 범위를 두고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예상된다.
사건의 발단: 단 한 번의 번호 실수로 사라진 거액
사건은 지난 2024년 8월 2일, 매니토바주의 로펌 '테일러 맥카프리(Taylor McCaffrey LLP)'가 부동산 거래를 대행하던 중 발생했다.
로펌은 모기지 대출 기관으로부터 343,335달러를 위니펙 지점의 신탁 계좌로 송금받으려 했으나, 로펌 측이 제공한 지점 번호(Transit Number)가 잘못되어 엉뚱한 법인 계좌로 입금되었다.
입금 5일 후 자금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로펌이 은행에 문의했으나, 이미 해당 법인 계좌의 예금주는 모로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수차례에 걸쳐 자금을 해외 송금한 뒤였다. 현재 해당 계좌에는 약 4,789달러의 잔액만 남은 상태다.
은행의 방어: "우리는 규정을 따랐을 뿐"
CIBC는 최근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자신들은 '캐나다 결산법(Canadian Payments Act)'과 관련 조례를 철저히 준수했다고 반박했다.
은행 측은 "결제 정보에 이름과 계좌 번호가 모두 포함된 경우,
금융기관은 두 정보의 불일치를 확인해야 할 의무가 없으며 오로지 계좌 번호나 식별자에 의존해 처리할 수 있다"는 관련 규정을 근거로 제시했다.
은행은 사고 인지 직후 즉시 자금 추적에 나섰고, 해외 은행에 송금 회수(Recall)를 요청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했으나 예금주가 이미 자금을 인출해버려 회수가 불가능해진 것은 은행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쟁점: 로펌의 과실 vs 은행의 확인 의무
로펌 측은 은행이 거액의 자금을 입금 처리하기 전, 수취인 이름과 계좌 정보가 맞는지 대조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CIBC는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이 로펌의 잘못된 정보 제공(과실)에 있으며, 사건 발생 후 경찰에 신고하는 등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고 맞서고 있다.
편리함 속에 숨은 '송금의 함정'
디지털 뱅킹 시대에 송금은 클릭 한 번으로 끝나지만, 그 책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 사건은 캐나다 금융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송금인이 제공한 번호'의 정확성을 신뢰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수억 원이 오가는 거래에서도 성명 대조 절차가 필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이번 판결은 향후 금융기관의 디지털 거래에 대한 주의 의무 가이드라인을 재정립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다. 거액 송금 시에는 번호를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것만이 내 재산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