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이 이번 4월 8일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흔히 애플의 성공 비결로 스티브 잡스의 천재적인 디자인 감각과 제품 비전을 꼽지만, 전문가들은 오늘날 1,200달러짜리 아이폰을 결함 없이 전 세계에 대량 공급할 수 있게 만든 핵심 동력으로 1940년대 전후 일본에서 시작된 제조 철학을 지목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뒤에는 미 군정기 일본의 통신 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전수되었던 미국의 '품질 경영'이라는 잊힌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맥아더의 특명과 사라스혼, 일본 제조의 혼을 깨우다
이야기는 1945년 8월,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에 착륙하며 시작된다. 당시 일본의 통신망은 괴멸 상태였고, 맥아더는 명령 하달조차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33세의 젊은 물리학자이자 엔지니어인 호머 사라스혼을 불러들였다. 사라스혼은 일본 경영진들이 기술적 문제보다 '권위에 순응하고 질문하지 않는' 태도에 갇혀 있음을 간파했다. 그는 오사카의 한 호텔에서 찰스 프로츠먼과 함께 경영 교과서를 집필하고, 일본의 최고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8주간의 강도 높은 관리직 코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세미나에서 사라스혼은 "품질이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경영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생산 현장 노동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경영진이 현장의 세부 사항을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이 수업을 들은 이들 중에는 훗날 소니(Sony)를 창업한 이부카 마사루와 모리타 아키오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라스혼이 심은 씨앗은 윌리엄 에드워드 데밍과 조셉 주란으로 이어지며 일본을 1980년대 세계 제조 강국으로 변모시켰고, 미국이 잊고 지냈던 품질의 가치를 일본이 역수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깨달음, '천재성'에서 '공정'으로의 진화
1980년대 후반,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NeXT)를 세운 스티브 잡스는 일본의 압도적인 품질에 큰 충격을 받았다. 초기 잡스는 "천재들을 방에 가두고 압박하면 혁신이 나온다"는 '브루트 포스' 방식을 고수하며 공정을 관료주의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넥스트의 야심작이 시장에서 외면받고 제조 라인이 멈춰 서는 실패를 겪으며 그의 생각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품질 전문가 노리아키 카노와 조셉 주란을 직접 만나 "품질이란 모든 과정을 반복적인 프로세스로 보고 도구화하는 것"이라는 일본식 품질 경영의 정수를 흡수했다.
이러한 깨달음은 잡스가 인수한 픽사(Pixar)에서 먼저 빛을 발했다. 'A급 인재'들의 소진으로 다작이 불가능했던 픽사에 일본식 제조 공정 개념을 도입해 누구나 생산 라인의 문제를 지적하고 멈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에서 다진 품질 DNA를 이식했다. 비록 애플이 파산 위기로 인해 직접 제조 대신 한국, 대만, 중국의 협력사를 활용하는 길을 택했지만, 그 근간에는 일본에서 배운 '무결점 제조 철학'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폰이 삼켜버린 일본 가전, 그리고 제조 주권의 이동
애플의 품질 혁명은 결국 스승이었던 일본 기업들을 집어삼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의 대표 브랜드들은 애플 제국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시장 점유율을 잃었다. 잡스가 강조한
'품질과 디자인의 결합'은 단순히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전 세계적인 공급망을 정교한 시계태엽처럼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 승리는 미국 본토가 아닌 중국 심천의 공장 라인에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국 제조 주권 회복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기고 있다.
제조 철학의 전이가 남긴 현대적 교훈과 과제
애플의 50년 역사는 기술의 혁신뿐만 아니라 '제조라는 문명적 지식'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전파되고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미국이 발명하고 일본이 다듬어 다시 애플이 완성한 이 철학은 이제 인도와 텍사스로의 이전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진정한 제조 경쟁력은 세금 혜택이나 공장 설립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디테일을 중시하고 공정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품질의 마음가짐'이 조직 전체에 뿌리내려야 가능하다는 점을 애플의 50년 뿌리는 시사하고 있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