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국 공항의 안전을 책임지는 교통보안청(TSA)이 수집한 승객 정보를 이민세관집행국(ICE)에 넘겨 대규모 체포 작전을 도운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2월까지 TSA의 제보를 받은 ICE가 공항 등지에서 체포한 인원은 8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테러 방지’ 목적의 승객 정보, ‘이민 단속’에 전용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2007년 테러 방지를 위해 도입된 ‘시큐어 플라이트’ 프로그램이 있다. 당초 이 프로그램은 테러 의심자 명단(Watchlist)을 대조하기 위해 승객 정보를 검토하는 용도로 제한되어 있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대규모 추방’ 정책에 따라 일반 불법 체포용으로 성격이 변질됐다.
자료에 따르면 TSA는 약 3만 1,000명에 달하는 여행객 기록을 ICE에 넘겼다. ICE는 이 정보를 활용해 대상자의 여행 일정을 파악하고, 공항 내 혹은 이동 경로에서 이들을 체포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안보부(DHS)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시스템 전체의 보안과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솔루션을 추구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공항 내 ‘비정한 체포’ 잇따라… 가정도 파괴
실제로 공항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이나 여행 중에 체포되어 추방된 사례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국에 20년 이상 거주하며 영주권을 신청 중이던 한 아일랜드계 부부는 플로리다에서 뉴욕으로 휴가를 떠나려다 아이들(7세, 10세)이 보는 앞에서 체포되어 결국 추방됐다. 아이들은 미국에 남겨진 채 부모와 생이별하게 됐다.
보스턴에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러 가던 대학생이 구금되거나,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한 어머니가 오열하며 체포되는 등 공항은 이민자들에게 공포의 장소가 되고 있다.
정치권 갈등 격화… “공항 내 ICE 배치 철회하라”
민주당은 공항에 ICE 요원들이 배치된 것을 두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예산 갈등으로 TSA 요원들의 급여가 체납되자 트럼프 대통령이 12개 이상의 공항에 ICE 요원들을 투입해 보안 업무를 지원하게 한 조치에 대해 “여행객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줄 뿐”이라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부임한 마크웨인 멀린 국토안보부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40여 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이민국 요원들이 공항에 상주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무관한 과잉 단속”이라고 지적했다.
공항의 ‘빅 브라더’화, 신뢰 잃은 공공 보안의 현주소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제공한 개인 정보가 본인을 추방하는 칼날로 돌아오는 현실은 충격적이다. 테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라고 만든 감시 체계가 행정부의 입맛에 따라 특정 집단을 색출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
공항은 국가의 관문이자 모든 여행객이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공공장소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공항은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에겐 함정이 되고 있다. 정보 공유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 하락은 물론 항공 산업 전반에 걸친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법 집행의 엄격함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과 제도의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지 냉철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