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캐나다 달러(루니)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페트로커런시(Petrocurrency, 석유 화폐)’로서의 명성을 미국 달러에 완전히 빼앗겼다는 충격적인 진단이 나왔다.
9일(목) 발표된 글로벌 외환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중동 위기로 인한 에너지 가격 변동 속에서도 캐나다 달러와 유가의 전통적인 동행 관계가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셰일 혁명의 역습: "에너지 주도권이 미 달러로 이동"
코페이 커런시 리서치(Corpay Currency Research)의 칼 샤모타 수석 시장 분석가는 "미국이 셰일 혁명을 통해 세계 최대의 원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등극하면서, 이제 에너지 가격의 변동은 캐나다가 아닌 미국의 무역 수지와 자본 흐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8일(수) 미국과 이란의 일시적 휴전 소식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16%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달러는 미 달러 대비
오히려 0.3% 상승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이는 유가가 떨어지면 함께 하락하던 과거의 '루니-유가 공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캐나다 경제의 구조적 모순: 유가 혜택이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캐나다 달러가 유가와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이유를 캐나다 경제의 체질 변화에서 찾고 있다. 서비스 크레딧 유니온(Servus Credit Union)의 찰스 세인트 아르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원인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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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산업 재투자 실종: 2015년 이후 캐나다 에너지 기업들은 수익을 국내 설비 투자나 생산 확대에 쓰기보다 주주 배당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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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해외 유출: 에너지 업계 주주의 약 75%가 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유가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이 캐나다 국내로 환전되어 유입되지 않고 곧장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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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및 가계 부채의 덫: 부풀어 오른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 부담이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높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루니를 매력적인 자산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안전 자산' 지위마저 상실… 위기에 취약한 루니의 현주소
과거 유가가 급등하면 루니는 미 달러 가치를 추월하며 강세를 보였으나, 이제는 오히려 중동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닥치면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미 달러로만 몰리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CIBC 캐피털 마켓의 사라 잉 외환 전략 책임자는 "현재 캐나다 달러의 소폭 반등은 유가 덕분이 아니라, 휴전 소식에 안도한 투자자들이 미 달러에서 일부 자금을 빼내 위험 자산으로 분산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반사 이익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분쟁이 재발할 경우 루니가 미화 71센트 선까지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원의 풍요 속에서 부자가 되지 못하는 캐나다 경제
캐나다 달러가 '석유 화폐'의 지위를 잃었다는 것은 환율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 경제의 원동력과 미래 가치가 감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에너지 자립을 넘어 에너지 수출 강국으로서 미 달러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동안, 캐나다는 자원 강국의 이점을 경제 전반의 경쟁력으로 치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또한,에너지 산업에서 창출된 부가 국내로 재투자되지 않고 외국의 주주들에게만 흘러가는 현재의 구조는 '재주는 캐나다가 넘고 돈은 외국 자본이 챙기는' 꼴이다. 정부와 업계는 루니의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유가 반등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에너지 수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부동산에 편중된 경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페트로커런시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캐나다 경제는 현재의 자원 산업을 구조 개편과 더불어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시험대에 서 있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