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야심찬 프로젝트인 고디 하우 국제 대교(Gordie Howe International Bridge)의 개통일이 정치적 폭풍을 피하기 위해 물밑에서 은밀하게 조율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통 저지를 위협한 이후, 양국 관계자들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극도로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측 자극 피하자"… 개통 발표 늦추는 양국 정부
16일 CTV 뉴스가 인용한 미국 측 소식통에 따르면, 양국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강경파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교량 개통과 관련된 비판 여론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이후, 양측 모두 개통일 발표가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되지 않도록 '정치적 냉각기'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교량을 관리하는 캐나다 국영 기업인 윈저-디트로이트 교량공사(WDBA) 측은 공식적으로 "2026년 봄 개통"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날짜는 함구하고 있다.
트럼프에 인질 된 64억 달러 교량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 2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의 낙농 공급 관리제, 온타리오 주류 판매점(LCBO)에서의 미국산 주류 취급 문제 등을 언급하며 "캐나다가 미국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존중하기 전까지는 교량 개통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특히 교량 건설 비용을 캐나다가 전액 부담하고 운영권도 갖는 구조를 문제 삼으며 "미국이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64억 달러가 투입된 국가적 인프라 사업이 양국 간 무역 전쟁의 '인질'이 된 형국이다.
"기술적 조율 중" vs 시장 반응은 "개통 임박"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실무진들은 개통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WDBA의 헤더 그론딘 대외협력 책임자는 개통 지연 우려에 대해 "톨게이트 시스템, 교통 관리 센터, 경관 조명 등 첨단 인프라를 재보정하고 테스트하는 통상적인 과정"이라며 정치적 해석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개통이 머지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시작된 고디 하우 브릿지 전용 통행료 할인 프로그램인 '브레이크어웨이'는 이미 5,000개 이상의 계정 등록과 12,000개 이상의 단말기 주문이 쏟아지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교량은 연결의 상징인가, 무역 전쟁의 상징인가"
윈저와 디트로이트를 잇는 고디 하우 대교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로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이 다리는 '연결'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 아래 캐나다를 압박하는 강력한 레버리지로 활용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공식 개통일을 "조용히" 조율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위협이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기술적 점검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정치적 셈법이 길어질수록, 매일 국경을 넘나드는 물류 종사자들과 시민들의 불편만 가중될 뿐이다. 경제적 실리를 위한 인프라가 정치적 구호에 가로막히는 작금의 상황은 향후 '트럼프 2기' 체제 아래 한층 더 험난해질 캐나다-미국 관계의 예고편처럼 느껴진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