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 목적' 세입자 내보낸 집주인의 '4만 5천 불 배상 판결' 뒤집혀

본문 바로가기
토론토 중앙일보
뉴스 부동산 '거주 목적' 세입자 내보낸 집주인의 '4만 5천 불 배상 판결' 뒤집혀
부동산

'거주 목적' 세입자 내보낸 집주인의 '4만 5천 불 배상 판결' 뒤집혀

‘부모 간병’ 위한 상황...참작 가능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0
BC주 고등법원, 세입자에게 12개월치 월세 배상 명령한 주택임대차본부(RTB) 결정 파기
실거주 목적으로 퇴거 조치 후 부친 위독으로 중국행… “외결적 상황 고려 안 한 불공정 심리”
RTB 중재인의 증거 누락 및 절차적 부당성 지적… 사건 재심리 명령
[Unsplash @Lee Robinson]
[Unsplash @Lee Robinson]
(밴쿠버)
실거주를 목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집을 비우게 된 집주인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물린 주택임대차본부(RTB)의 결정이 법원에 의해 뒤집혔다. BC주 고등법원은 집주인이 제출한 증거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RTB의 심리 과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판결했다.

실거주 중 터진 부친의 위급 상황… 5개월간의 공백이 화근

노스 밴쿠버 몬트리얼 블루버드 소재 주택의 소유주인 미유키 시노는 2024년 6월, 본인이 직접 거주하겠다는 이유로 세입자 마이크 네언과 수진 렌에게 퇴거를 통보했다. 시노는 세입자들이 나간 뒤인 8월 해당 유닛으로 이사했으나, 두 달 뒤인 10월 중국에 계신 88세 부친이 흉부 동맥류 파열로 대수술을 받았다는 급보를 받았다.

시노는 부친의 간병을 위해 즉시 중국으로 출국해 5개월간 머물렀으며, 부친의 상태가 호전된 2025년 4월에야 노스 밴쿠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공백을 문제 삼은 전 세입자들은 2025년 6월, 집주인이 ‘실거주 6개월 유지’ 규정을 어겼다며 RTB에 분쟁 해결을 신청했다.

RTB “4만 5천 달러 배상하라”… 법원 “심리 과정 불공정했다”

BC주 주택임대차법에 따르면,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세입자를 내보낼 경우 반드시 6개월 이상 해당 유닛에 거주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세입자에게 12개월치 월세를 배상해야 한다. RTB 중재인은 시노가 6개월 연속 거주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여 45,156달러를 배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산드라 윌킨슨 BC주 고등법원 판사의 판단은 달랐다. 윌킨슨 판사는 지난 4월 14일 내린 결정문에서 “RTB 중재인이 집주인이 제출한 번역된 증거 자료와 구두 증언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재인이 집주인에게 중국 방문 이유를 설명할 기회를 충분히 주지 않았고, 제출된 의료 기록 등 핵심 증거를 합당한 이유 없이 기각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참작 가능한 상황’ 인정 여부 관건… 사건 재심리로

현행법상 실거주 6개월 요건을 채우지 못했더라도 ‘참작 가능한 외결적 상황(Extenuating Circumstances)’이 증명될 경우 배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원은 시노가 통역사를 동반해 스스로 변론하는 과정에서 중재인이 관련 규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질문조차 던지지 않은 점을 들어 ‘절차적 공정성’이 훼손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고등법원은 기존 RTB의 배상 명령과 재심 결정을 모두 파기했다. 다만 법원이 직접 무죄를 확정하는 대신, 이미 제출된 증거들을 바탕으로 RTB가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판결은 집주인의 실거주 의무를 엄격히 규제하되, 가족의 위급한 건강 상태와 같은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서는 공정한 심리가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법의 잣대와 인륜 사이, 임대차 분쟁의 정교한 접근 필요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한 ‘실거주 6개월’ 규정은 악덕 집주인의 편법 퇴거를 막는 강력한 장치다. 하지만 이번 사례처럼 부모의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간병 상황까지 ‘거주지 이탈’로 간주해 징벌적 배상을 물리는 것은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RTB는 행정 편의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법은 차갑지만 그 적용은 인간적이어야 하며, 특히 언어 장벽이 있는 당사자가 자신의 정당한 사유를 충분히 소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공정한 심리의 시작이다. 4만 5천 달러라는 거액의 판결이 뒤집힌 배경에는 숫자가 아닌 ‘상황’에 주목한 법원의 균형 잡힌 시각이 있었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

※한인사회 및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불합리한 관행,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제보와 취재 요청은 news@koreadailytoronto.com 으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뉴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