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고통", 정신 질환 환자의 처절한 사법부 호소
토론토의 한 여성이 정신 질환만을 사유로 한 조력 사망(MAID)을 허용해달라며 온타리오주 고등법원에 긴급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4일 토론토 법원 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만난 클레어 엘리즈 브로소는 지난 1월 이후 외부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30년 넘게 자신을 괴롭혀온 중증 양극성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한계점에 다다랐다며, 국가가 이를 단순히 '참아야 할 일'로 치부하는 것은 비인도적이라고 주장했다.
브로소와 조력 사망 지지 단체 '존엄사협회(Dying with Dignity)'는 이미 지난 2024년 8월, 정신 질환자를 조력 사망 대상에서 제외하는 현행 제도가 캐나다 권리 및 자유 헌장을 위반한다는 취지의 헌법 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 긴급 신청은 본안 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당장 견디기 힘든 고통을 끝낼 수 있도록 자신에게 '헌법적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절박한 요구다. 그녀의 법률 대리인인 마이클 펜릭 변호사는 "상황이 매우 이례적인 만큼, 올여름이 지나기 전 재판 기일이 잡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연방 정부의 제도 확대 지연, "의학적 판단 기준 모호" 반대 목소리도
캐나다 연방 정부는 정신 질환 단독 사유에 대한 조력 사망 확대 시기를 이미 여러 차례 연기한 바 있다. 현재 이 문제는 위원회에서 논의 중이며, 다음 연장 기한인 2027년 3월 이전에 최종 권고안이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중독 및 정신건강 센터(CAMH) 등 의료계 일부에서는 정신 질환을 '불치'로 규정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나 정신과 전문의들 간의 합의가 아직 부족하다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자살 위기 헬프라인(9-8-8)의 엘리슨 크로포드 박사는 "자살 의도와 조력 사망에 대한 관심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제도 확대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고통받는 환자들에게는 조력 사망보다 강화된 자살 예방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마조리 미셸 보건부 장관 역시 "캐나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중대한 결정"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다림 자체가 고통인 환자들, '죽을 권리' 둘러싼 사회적 논쟁 가속
브로소는 정부의 신중론과 제도적 지연이 자신에게는 '매달 추가되는 고통의 연장'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법정이 자신의 상태가 조력 사망 요건인 '심각하고 불치인 상태'에 해당함을 인정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법적 다툼을 넘어, 신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 또한 조력 사망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캐나다 사회의 거대한 윤리적·법적 논쟁을 다시 점화시켰다.
법조계는 이번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 유사한 처지의 환자들이 줄이어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신 질환이라는 보이지 않는 고통을 국가가 어디까지 개인의 자결권 영역으로 인정할 것인지, 그리고 의료계가 이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준비가 되었는지가 관건이다. 브로소의 호소는 사법부가 법의 잣대를 넘어 고통받는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떤 통찰을 내놓을지 시험대에 올리게 됐다.
고통의 평등권, 정신적 고통도 신체적 고통만큼 존중받아야
이번 소송은 신체 질환자와 정신 질환자 사이의 '고통의 형평성'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다. 암이나 난치병 환자에게는 허용되는 품위 있는 죽음의 선택권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적 지옥 속에 사는 이들에게는 왜 원천 봉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국가가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치료 불가능한 고통을 무한정 견디라고 강요하는 것이 과연 국가의 역할인지 되묻게 한다. 법원이 이 '예외적 요청'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는 캐나다 사법 역사상 인권과 자결권의 범위를 한 단계 더 확장하는 역사적 판결이 될 것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