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밴쿠버의 악명 높은 ‘빈집세(Empty Homes Tax, EHT)’를 무력화하려던 주택 소유주들의 법적 투쟁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대법원은 빈집세가 부당하다며 시를 상대로 제기된 사법 심사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시의 과세 권한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임대 사업자, 음악가, 은퇴 노부부 등 서로 다른 처지에 놓인 세 명의 소유주가 제기했다. 이들은 빈집세를 "지속적인 악몽"이라 부르며 강력히 반발했으나, 법원은 시의 정책적 결정이 법적 테두리 안에 있다고 판단했다.
사례1: “코로나로 건축 중단됐는데 11만 달러 세금폭탄”
밴쿠버에 거주하며 여러 임대 자산을 보유한 리 단 씨는 2020년 마린 드라이브의 빈 땅을 350만 달러에 매입했다. 원래 집이 있던 자리였으나 화재로 철거된 상태였다. 단 씨는 새집을 지으려 했으나 팬데믹으로 공사비가 폭등하며 계획이 무산됐다. 살 수도, 임대할 수도 없는 땅이었지만 밴쿠버시는 2022년 그에게 11만 3,000달러의 빈집세를 부과했다.
사례2: “추억 담긴 제2의 집, 임대 스트레스에 악몽 같아”
70대 음악가 다니엘 맥클라우드 씨는 밴쿠버와 밴프를 오가며 수십 년을 살았다. 연방정부와의 리스 계약 때문에 밴프를 주 거주지로 등록해야만 했던 그는, 밴쿠버 집을 비워둘 수밖에 없었다. 과거 임대인과의 악연으로 트라우마가 있는 그는 집을 세놓는 대신 지인이나 옛 연인을 거주하게 하며 세금을 피하려 애썼지만, 이 과정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으며 이를 "끝나지 않는 악몽"이라 표현했다.
사례3: “은퇴 후 여가 즐기려 샀는데… 평생 계획 망가져”
랭리에 거주하는 80대 은퇴 부부 크리스토퍼 브리튼 씨는 2013년 밴쿠버 콜 하버의 아파트를 샀다. 주말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용도였지 투자 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2018년 빈집세 도입으로 첫해 6,000달러를 낸 뒤, 계속 오르는 세율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마지못해" 집을 임대용으로 내놓았다. 브리튼 씨는 은퇴 계획이 망가졌고 삶의 질이 떨어졌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법원 “세금은 조닝(Zoning, 용도지역) 아니다… 시의 정책 결정권 존중”
청구인들은 밴쿠버시가 조례 제정 전 공청회를 열지 않았으며(밴쿠버 헌장 위반), 빈 땅이나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제2의 주택에 과세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캐나다 권리자유헌장이 보장하는 생명, 자유, 신체의 안전(7조) 및 부당한 수색·압수 금지(8조) 조항을 위반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팔빈더 카우르 셰르길 판사는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모든 주장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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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정당성: 빈집세는 토지 사용을 규제하는 ‘조닝(Zoning)’이 아닌 ‘과세’ 조례이므로 공청회 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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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재량: 어떤 집을 면제하고 과세할지 결정하는 것은 시의회 고유의 정책적 균형 감각에 달린 문제다. 특정 시민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 결정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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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땅 과세의 목적: 빈집세의 취지는 주택 자원의 최적 활용을 유도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주택 개발이 가능한 빈 땅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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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반 불가: 과세로 인한 경제적 이익 침해는 헌법상 ‘자유’의 권리에 해당하지 않으며, 무단 가옥 수색 권한 역시 실제로 집행된 적이 없으므로 인권 침해를 논하기엔 시기상조다.
주택 위기라는 거대 명분 앞에 희석되는 ‘개인의 선택’
이번 판결은 주택 부족이라는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강력한 행정 규제가 개인의 재산권과 라이프스타일을 어디까지 제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시의회가 어디에 선을 그을지는 시의회의 권한"이라며 시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판결문에 나타난 소유주들의 사연은 ‘투기꾼’이라는 프레임 뒤에 숨겨진 평범한 시민들의 고통을 드러낸다.
특히 80대 노부부가 추억이 깃든 집을 세금 때문에 포기하고 밴쿠버에 올 때마다 호텔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이나, 공사비 폭등이라는 불가항력적 이유로 집을 짓지 못한 소유주에게 거액의 세금을 물리는 것은 정책의 유연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빈집세가 렌트 매물을 늘리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개개인의 ‘심리적 악몽’과 ‘망가진 은퇴 설계’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위로를 건넬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