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캐나다 소매업계가 마트 내 절도 범죄로 인해 연간 10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으며 고통받고 있다. 단순한 생계형 절도를 넘어 조직범죄 집단까지 마트를 표적으로 삼으면서 소매업계는 이를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6일 캐나다 소매업협회(RCC)는 이메일 성명을 통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생활고로 인한 절도도 존재하지만, 최근 소매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조직화된 범죄 네트워크가 연계된 계획적이고 반복적인 도난 사건”이라고 밝혔다. 마크 멘델슨 범죄 전문가는 “동유럽계 조직범죄단이 심도 깊게 연루되어 있으며, 이는 대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비씨(BC)주 리치먼드 연방기갑경찰(RCMP)은 올해 들어 발생한 관내 슈퍼마켓 절도 사건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두 배나 급증했다고 전했다. 오타와 경찰 역시 지난 1월 도심 마트에서 특별 단속(Project Pantry)을 벌여 12명을 체포하고 78건의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절도범들은 물건을 훔친 즉시 대기 중인 차량으로 달려가 장물과 마약 또는 현금을 교환하는 등 철저히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바코드 바꿔치기부터 ‘음소거’ 스캔까지… 셀프 계산대의 역습
특히 매장 내 ‘셀프 계산대(Self-checkout)’가 범죄자들의 주된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 구엘프 경찰은 셀프 계산대에서 97달러 상당의 고가 분유를 스캔하면서 1달러 미만의 저렴한 상품 바코드로 바꿔치기해 결제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훔친 남성을 체포했다.
멘델슨 전문가는 “현장에서는 바코드 인식 소리(비프음)가 나지 않는데도 물건을 계속 장바구니에 담는 식의 대담한 절도가 눈앞에서 벌어지기도 한다”며 “미국 월마트가 일부 매장에서 셀프 계산대를 철거하기 시작한 것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도난 손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통가에서는 이렇게 도난당한 대량의 식료품과 육류 등이 암시장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온타리오주 윈저에서는 트랙터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22만 달러 상당의 소고기가 통째로 도난당하는 대규모 탈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영난에 허덕이는 일부 소규모 식당이나 마트가 장물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이러한 불법 유통 식자재를 구매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편리함이 가져온 부메랑, ‘신뢰’ 기반한 셀프 계산대의 한계
소비자의 편의성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셀프 계산대가 이제는 소매업계의 명줄을 죄는 ‘보안 구멍’이 되어 돌아왔다. 고객의 양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고물가 시대와 결합하고, 여기에 조직범죄까지 가세하면서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연간 100억 달러라는 손실액은 매장의 손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마트들은 늘어난 도난 비용과 추가적인 보안 요원 인건비를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정직하게 값을 치르는 일반 소비자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미국의 대형 유통체인들이 셀프 계산대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추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인화 기술이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사회적 신뢰 저하와 범죄로 인한 비용이 더 크다면, 기술의 퇴보는 불가피하다.
편리함의 대가가 공동체의 도덕적 해이와 가계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유통 업계와 사법 당국의 보다 정교하고 강력한 감시 체계 도입이 시급하다.
토론토 중앙일보 편집팀 (news@koreadailytoron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