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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하나님의 나라

이홍우 2022-06-22 0

연민과 하나님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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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점심 시간에 자주 가는 사무실 근처의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들렀습니다. 그 날 따라 줄이 좀 길어 보였습니다.  맨 앞에서 보행기에 의지한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지 직원은 긴 막대기로 벽에 걸린 메뉴판을 가리키며 주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문을 마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기다리는 줄은 더 길어졌습니다.  모두의 시선은 이 특별한 주문이 끝날 때까지 할머니와 직원에게 향했습니다.  직원은 시종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의 주문을 받았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도 불평 없이 잘 기다려 주었습니다.  할머니를 홀대하지 않고 환대해준 점원이 참 훌륭해 보였습니다. 


연민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직원은 분명 그 할머니를 처지를 불쌍하게 여겼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남순 신학교수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연민의 시선을 배우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폭정과 수탈로 서민들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온갖 종교적 계율로 힘 없는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연민의 시선은 소외된 사람들로 향했습니다.  창녀,세리, 장애인, 고아 ,과부 등과 고통을 기꺼이 나누며 그들을  소외시키는 사회 구조에 대해 저항했습니다.


사회학자 김현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환대의 선행 조건은 타자를 불쌍히 여기는 연민입니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사람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음을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학적, 종말론적 담론은 접어두고, 가장 선명한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종교와 인종의 차이, 빈부의 차이, 사회적 지위에 따른 사람과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 지고, 사회 약자들이 삶의 궁지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일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소외 시키는 일은 그들로 사람 연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폭력적 행위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십계명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사람을 소외시키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정의 했습니다.  소외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연기’를 하지 못하게 자리를 뺏는 것이니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이면 모든 사람이 성경책을 끼고 교회에 간다 해도 사회 한 곳에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면 그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약자를 향한 연민의 시선이 없는 사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거리가 멀다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예수님은 대답하였습니다.  지금 여기서 약자를 불쌍히 여기는 삶의 태도야 말로 짧은 인생길에 그나마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작은 파장이라도 남기는 길일 것입니다.  이런 작은 파장들이 모이면 제도를 바꾸고 사회 구조를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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