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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이해: 동침하매

김현석 2021-02-03 0

창세기 이해: 동침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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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하와와 동침하매 (창 4:1)의 ‘동침’ 단어는 실제 히브리어 원어 성경은 ‘야다’로 쓰여 있는데 이 의미는 “안다(Knew)”입니다.


하나님을 아십니까? 진짜요?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 쓰인 ‘야다’는 행동동사로 “만나서 접한다, 동침한다” 입니다. 체험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요구하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신 성령과 만나 동침 즉, 임재를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마냥 귀로 들어 머리로 아는 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 20)라고 하셨습니다. 이 단계가 하나님을 아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식 언어 개념으로 히브리어 원어를 잘못 인식해 버립니다. 그러니 원 뜻이 변질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린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 정통파 신자로서 정확히 믿음과 행위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하지만, 하나님의 답은,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마25:12)입니다. 황당하겠지요? 14절을 보시면 그 황당한 결과가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리로 아는 신앙에서, 하나님의 영을 접함으로, 하나님을 체험하여 하나님을 아는 자, 믿는 자로 우리는 있어야 합니다(요1:12).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롬 1: 17). 그래서 이제는 내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요, 내 안의 성령 때문에 내가 믿어져야 합니다. 그때서야 이제는 내가 주를 믿는다, 마음과 영으로 시인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롬 10:10, 요일 4:2)


아담이 하나님의 생기 곧, 하나님의 영을 얻음으로, 하나님을 체험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최초의 성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위치까지 도전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어 다시금 아담의 원형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가 다 못한 창조의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했듯이 성도에게 죄가 죄로 인정받지 않게 되는 특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죄를 즐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한다면 아담과 같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듯 천국에서 쫓겨납니다. 믿음만 있다면 천국에 다 간다고요? 그런 싸구려 복음을 들고, 겸손한 말과 근엄한 얼굴로 온갖 온유한 말로 유혹하는 자들과, 같이 놀지 마세요. 멀리하세요. 헌금 먹는 하마일 뿐입니다. 때가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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