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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젊어가는 노인들의 불만

최봉호 2021-02-26 0

갈수록 젊어가는 노인들의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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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신문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67세인 어느 시어머니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며느리 앞에서 “아유, 나 원 참 불쾌해서..“라며 상기된 얼굴로 투덜거렸다. 놀란 며느리가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글쎄 나보다 다섯 살 정도밖에 안 어려보이는 여자가 나한테 할머니! 길 좀 물을게요. 하는 거 아니겠니!“ 이에 며느리가 ”어머님은 손자가 4명이니 진짜 할머니 맞거든요.“라고 진실을 확인시켜줬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말은 들은 척도 안했다. 그리곤 길을 묻던 그 여자는 예의 없는 사람이고, 노인의 기준이 65세인 것도 잘못된 것이라며 계속 툴툴거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노인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상향할 지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현재 만 65세 이상 노인이란 기준은 1964년에 정해져 57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반세기가 지난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니 갈수록 젊어지는 노인층은 불쾌하기 이를 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2015년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이 적정한 노인 연령 기준을 조사해봤더니 65세 이상 노인의 78.3%가 70세 이상이 적정하다고 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전체 대상 조사에서도 노인의 86.3%가 70세 이상이 적정하다고 응답했다. 이와 같은 노인들의 인식을 사회적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보니 노인들의 정신적 방황이 이곳 저곳에서 서성이게 됐다. 그 여파도 각가지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에는 동네마다 노인복지관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 가지 않는 노인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한다. 이유는 그곳에 드나들면 스스로 노인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란다. 젊은 노인들의 이유 있는 반항(?)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있다.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일반석 구분을 없앴으면 좋겠다고까지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내가 벌써 노인인가?” 또는 “왜 노인들을 한구석으로 몰아넣나 싶어 서글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석에 앉으면 젊은이들이 “왜 여기에 앉나”하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불편하단다. 이래도 불편하고 저래도 불편한 100세시대의 노인들. 이들은 노인 기준이 65세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칭에도 불만이 많다.


2004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민원인 호칭 개선안으로 연령과 상관없이 모두 ‘고객님’이라고 부를 것을 권장했다. 호칭으로 인한 복잡한 판단을 미루고 민원인을 존중하겠다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시민들을 고객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또한 노인들은 우리가 관청에 물건 사러가는 손님이냐는 것이다.


여하튼 요즘은 어디를 가나 노인들을 ‘어머님’, ‘아버님’ 또는 ‘어르신’이라고 나름대로 높여 부른다. 그러나 노인들의 입장에선 ‘내가 니들 애비 에미냐?’ 또는 ‘지금이 조선시대냐? 어르신이 뭐냐?’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 민원실에서는 이름에 님자를 붙이거나 연세가 지긋한 주민들에게는 ‘선생님’과 ‘어르신’ 등으로 상황에 맞춰 부른다고 한다. 국립국어원도 젊은 노인을 호칭하는 말로 ‘선생님’을 추천하고 있다.  


노인 선생님들! 노인의 기준이나 호칭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시라. 지금 선생들께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골든 에이지(Golden Age·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지 않으신가? 이 시기에 무언가 하나쯤 남기시라! 68세에 ‘대성당’을 조각한 오귀스트 로댕같이, 71세에 패션계를 평정한 코코 샤넬같이 인생의 황금기에 빛나는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93세 때 인생의 전성기는 “열심히 저술 활동을 하던 60대 후반이었다”고 했다. 현재 102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도 “내 삶의 황금기는 60~75세였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잘스는 90세에 하루 6시간씩 연습하며 “난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인생의 황금기는 쓸데없는 불평이나 투덜거리는 시기가 아니라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집중해야하는 때이다.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세상만사를 견디는 힘도 달라지는 것이다. 


나이만 들었다고 존경받는 건 아니란 얘기다. 노인의 기준은 정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호칭도 부르는 대로 대답하시라. 그렇지 않으면 삼노三老(노욕老慾, 노탐老貪, 노추老醜)에 빠질 수도 있다. 아울러 시대에 뒤떨어진 ‘꼰대’, ‘틀딱’소리만 듣게 된다. ‘노인의 지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혜로운 노인’이 되려는 노력이다. 그래야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 


2천 년 전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돼야만 거둘 수 있는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골든 에이지, 지금이 제철이 아니신가? 거두시라! 지금 거두지 못하면 영원히 실기하고 만다.<*>

<Saturday February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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