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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성령의 열매 절제(Self-Control)

김윤규 2024-01-19 0

우리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뛰어 넘는 상황이나 유혹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과 우리들의 삶의 현실과의 괴리(乖離)는 결과적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실수와 잘못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때때로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고나서 ‘조금만 더 참을 걸!’하며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절제 되지 않은 자신의 감정의 표현과 충동적인 행동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 ‘절제’(enkrateia: self-control)는 자신의 감정(emotion)이나 충동(impulse) 또는 욕구(desire)를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언어의 절제(temperate language)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아홉 번째 열매 ‘절제’를 영어 표현에서 ‘self-control’이라고 번역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절제’란 마치 자동차에서 속도를 제어하는 제동장치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운전자가 속도를 제어하는 자동차의 제동장치가 고장이 난 사실을 알고도 운전을 한다고 하면 운전자는 큰 사고를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을 위험에 내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러면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어지고 있는 헬라 문화 가운데에서 ‘절제’의 대표적인 대상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적 타락(prostitution), 도덕적 타락(immorality), 방탕(self-abandonment), 술취함(drunkenness), 그리고 혀의 사용(the use of the tongue)입니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에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 1-16절에서 남편과 아내의 결혼 관계를 설명하면서 언급하고 있는 절제의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절제의 부족’을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akrasia: lack of self-control) (고전 1:5)를 사용해서 음행과 관련해서 설명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헬라적 이원론에 근거해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방종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방종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신의 몸으로 어떠한 행동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뜻에 합당한 결혼 제도를 벗어난 음행의 죄를 범하고 있었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지는 음행의 죄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고전 6:9-10). 바울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에 절제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성적 타락의 길에 빠져 있는 자들을 향하여 사탄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권면합니다(고전 7:5).


그러면 성도가 ‘절제’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성도가 성적, 도덕적 타락과 방탕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삶을 살아가면 성도는 ‘경건’(piety)과 ‘거룩함’(holiness)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는 성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성도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이 경건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드리는 삶을 통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롬 6:14; 19).


잠깐의 유혹과 충동으로부터 절제함으로 우리들은 사탄에게 틈을 주지 않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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