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전쟁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토론토 중앙일보
수진의 영화 이야기

거인들의 전쟁

수진 2021-04-15 0

할리우드 고질라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고질라 vs 콩'. 그 어께엔 무거운 짐이 걸려있다. 극장가는 코로나로 인해 한산해지고 야심차게 선보인 전작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 는 재미없는 인간 중심의 서사가 몰입을 방해하며 부정적인 평을 들은 전적이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 과연 유종의 미를 거둘수 있을 것인가.


 

할리웃 괴수 영화는 기본적으로 핸디캡을 안고 있다.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어가는 그 특성상 대중들의 돈을 끌어모아야 수익이 보장되지만 괴물들만 줄창 나오면 매니아들은 즐거워도 일반 관객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반대로 인간 위주의 이야기가 전개되면 괴수의 비중도 액션도 줄어들게 되버려 괴수 영화로서의 즐거움이 사라진다. 


2014년의 고질라는 작품성 면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후반부에 집중된 액션으로 인해 지루하다는 평 또한 받았고 2019년의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전작에 비해 압도적으로 커진 스케일로 액션만큼은 호평받았지만 한층 더 지루해진 인간 위주의 서사로 인한 악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질라 vs 콩은 인간과 괴수 사이의 완급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동시에 주인공 인간 일행에 괴수를 참가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주인공 과학자 일행의 모험이 말 그대로 주역 괴수 콩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덕분에 이야기가 인간 위주로 돌아가는 일 없이 관객의 흥미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19b0ddcd36b05c3f546e8ceacc853d2c_1618496139_8627.JPG

[홍콩의 영롱한 야경 속에서 벌어지는 괴수들의 현란한 대결]


 

반 이상의 장면이 괴수들의 등장 및 격돌로 시작하거나 끝나고 거기에 대폭 추가된 액션의 빈도 덕분에 전작에 비해 등장하는 괴수들의 종류는 줄었지만 오히려 시각적 즐거움은 늘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는것은 아니다. 다양한 악기들과 고전 고질라 영화들의 테마를 잘 섞어 주요 테마곡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던 ‘킹 오브 몬스터 와는 달리 ‘고질라 vs 콩’ 의 음악은 마땅히 인상적인 것이 없다. 


또한 괴수들의 움직임을 압도적으로 무겁게 묘사한 14년의 고질라와 역시 묵직한 움직임은 살리되 화려함까지 강조해준 '킹 오브 몬스터' 와는 달리 본작의 액션은 상당부분 괴수들 눈높이에서 진행되며 움직임 또한 빠르게 바뀌어 거대괴수라는 무게감이 덜해졌다. 경쾌한 액션을 장점으로 여길 관객들도 많겠지만 전작들과의 일관성이 희석되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완성도는 아쉬움을 넘어서 매우 약해졌으며, 전작들과의 연결고리인 등장인물들의 역할 및 빈도 역시 무시해도 될만한 수준이다. 


주인공들의 주적 격인 ‘메카고질라’ 는 빈약하고 가녀린 디자인으로 인해 고질라보다 큰 신장에도 불구하고 위압감이 부족하며 그를 조종하는 인간 악역은 역시 빈약한 카리스마와 개연성 부족한 행동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데 실패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고질라 대 콩’ 은 전작들에 비해 훨씬 훌륭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폭 늘어난 괴수 격돌의 빈도는 영화 내내 흥미를 잃지 않게 해주며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항공 모함들을 발판 삼아 뛰어다니거나 지반을 방사열선으로 뚫어버리는 등 인상적으로 짜여진 장면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기억에 남을 정도다. 


19b0ddcd36b05c3f546e8ceacc853d2c_1618496165_176.JPG

[1962년의 '킹콩 vs 고질라', 59년만의 리매치.]


주인공 괴수 콩의 묘사 역시 훌륭한 편으로 낯선 세상에 위화감을 느끼면서 적응해 나가는 젊고 경험 부족한 캐릭터를 잘 표현함과 동시에 풍부한 표정 및 수화 등으로 주인공들과 소통하는 모습, 그리고 압도적으로 강한 적들을 상대로 처절하게 분투하는 모습을 통해 때로는 인간 캐릭터들 이상의 감정 이입을 이끌어낸다. 


액션에서 잘 살아나는 괴수들의 캐릭터 또한 훌륭하다. 고질라는 입에서 나오는 방사열선으로 장거리에서 적을 노리거나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힘으로 적을 밟아 무력화시키는 등 전작부터 이어진 위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콩은 유인원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도구와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헬기 착륙장을 떼어 방패로 활용하거나 건물에 오른 뒤 낙하해 무게를 싣는 등 지능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고질라 vs 콩은 4일 기준 3억불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면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고질라의 저작권을 가진 일본의 ‘도호’ 사와 계약의 만료로 인해 할리우드 고질라 시리즈는 이번작을 마지막으로 끝날 예정이지만 팬들의 재계약을 향한 성원과 악천후 속에서도 예상 이상의 흥행을 거둔 덕분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도 할리우드에서 멋진 그래픽으로 고질라를 볼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오피니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