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서성이다 가세요
기왕이면 햇볕 좋은 봄날에 가십시오
간다는 기별로 창문 앞을 서성이다,
친근한 유리창 몇 번 노크하다
아무 대답 없으면, 눈 녹은 계단 아래 지난 꿈 베고 누우세요
한길을 지키는 창문 서둘러 떠나진 마세요
햇볕 맑은 날, 수선화 줄기 고개 드는
앞뜰도 살뜰히 살피고 가셔야죠
아주 멀리는 말고,
아주 오래도 말고, 겸양과 참선의 찬비 한 겹 한 겹 맞으며
서너 날 앓아누우러 앞뜰 구석진 자리로 오세요
첫눈이 오면, 오만했던 허물 하얗게 참회하며
바람 펄렁이는 오후엔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마지막 거처들 찬찬히 둘러보고 오세요
밤이면 고민하던 그 자리 지키셔야죠
젊은 날의 허물로 가득 찬 겨울 앞뜰을 지켜주세요
꼭 그 자리여야만 합니다
찬비와 눈보라 견디고 견뎌 햇볕 좋은 봄날, 뜨락의 구석진 자리에서 선잠에 드십시오
지금 아니고
봄날에,
어느 햇볕 많은 봄날에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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