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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아요 ~~~

한순자 2023-06-08 0



 나 어린 시절 우리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트럭을 몇 대 갖고 운수업을 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이따금 할아버지 손님, 즉 친척분들이 오시기도 했지만 가끔은 아버지가 집으로 하주들을 모셔오시기도 했다. 게다가 운전사와 조수들까지 집에서 밥을 먹었으니 엄마 얘기를 빌면 그때 당시엔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엄마가 그 식구들 밥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명순 언니 현순이 머슴댁이 부엌일을 도맡아 했다. 


어쨌든 집안 환경이 그래서였는지, 난 늘 집안에 사람들이 많아 북적이는 그런 환경이 좋았다. 


 아마도 그때부터 미래에 내가 살고 싶은 환경에 대해 머릿속으로 그려 보게 되었다. 그것은 이다음에 결혼을 하면 늘 손님들로 북적이는 그런 환경을 상상해 보곤 했다. 어렸을 적 그만큼의 북적임이 아닌, 규모가 조금 큰 사람들도 더 많으면서 잔칫집처럼 그런 분위기, 맛을 상상해 오곤 했다. 그런 환경이면 이미 경제적인 여유가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이다. 


 하지만 살면서 내가 상상해 왔던 그런 환경은 되지 않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아도 내가 살고 싶은 그런 형편은 되었기에 우리 식구끼리 사는 것에 커다란 불만이 없었으니 어린 시절 로망에 대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작년 11월 말에 한인회에 있는 등산 동호회에 나가게 되면서, 어린 시절 꿈꾸어 왔던 환경을 만날 수 있었고, 만들어 갈 수가 있겠다 싶어 잔잔한 행복감이 넘치는 마음 숨길 수 없다. 


 등산 동호회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면서 ‘등산’이라니 어디를 등산한다는 거야, 궁금했는데, 등산은 바로 한인회관 앞에 위치한 써니부룩 공원을 걷는 것이라 했다. 그것도 회관 뒤쪽을 걷는 팀, 써니부룩 공원을 걷는 팀, 그리고 조금 더 빨리 걷는 팀으로 나뉜다고 했다. 


 난 내심 너무 반가웠다. 그동안 완전 은퇴를 하고는 취미 삼아 할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몇 군 데 가 보긴 했지만, 마음에 썩 와서 닿지 않아서 아쉬워하던 차에 우연히 그곳을 찾게 되었다. 

 우선 아침에 회관에 도착하면 커피가 준비되어있고, 매주 빵은 어디서 도네이션을 받아 오는 거라 했다. 그러니 각자 빵을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고, 거기서 커피와 빵을 함께 할 수 있고, 회원들이 맥반석(구운 계란) 빈대떡 호박죽 식혜 수박 오이 등을 갖고 오기도 하니 매주 작은 파티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니 연초에 떡국은 회관에서 준비를 할 것이니, 그냥 와도 되고 각자 먹을만한 음식 한 가지씩 해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난 떡과 겉절이를 준비해 갔다. 다른 사람들도 잡채 도토리묵 과일 샐러드 케이크 야쿠르트 막걸리 등 음식도 서로 겹치지 않고, 음식이 푸짐하게 뷔페로 즐길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우린 떡국과 음식을 같이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디 그뿐인가. 그날은 식사가 끝나고 한인 회장님이 준비한 롤 케이크가 각각 봉투에 넣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날의 그 분위기, 광경은, 어린 시절 내가 상상해 왔던(3, 4십 명)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난 이미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앞으로 종종 조촐하면서 잔칫집 분위기를 즐길 수 있겠다 싶었으니 신바람이 절로 났다. 그래서 내가 이런 모임은 자주 가지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자주 하기는 어렵고 일 년에 두 번은 한다고 했다.  

 하지만 커피는 매주 회원들이 돌아가며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한 통씩 사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단톡방에 매주 돌아가며 하는 게 부담을 느끼는 회원도 있겠다 싶었는지,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와서 즐기다 가시라”는 문자가 올라와 있어 살펴보니, 어느 이사님이 올린 문자였다. 이미 그분은 노인분들이 편하게 와서 걷고 커피라도 편하게 드시라고 시작된 취지였을 텐데 누구라도 부담이 될까 싶어 올린 문자였다.


 등산 동호회 규정은 65세 이상이었으나 나이엔 별로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단체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을 나가다 보니 그곳에 오는 분들이나 한인회 회장이나 이사가 어떤 식으로 그 모임을 꾸려가는지 알 수가 있었다. 대부분 다른 회원들은 빵이 오면 각자 갖고 가기도 하지만, 회장은 빵을 먹기 좋게 잘라서 테이블에 갖다 놓는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은 비가 와서 난 걷지는 않고 사무실에 있었는데 회장님이 오시더니 이런 날은 주방에서 떡국이라도 끓이면 나중에 운동을 하고

온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게 아니냐고 했다. 그것은 바로 회장님은 많은 사람을 대접하고 같이 즐기고 싶은 그런 성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는 사이 이젠 맥도널드 커피와 뜨거운 물을 준비해서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게 그렇게 준비를 했다.

 난 사실 그곳에 몇 번 나가면서 맥도널드 커피 대신 뜨거운 물을 준비해서 차와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싶었으나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것은 우선 물을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누가’ 할까 싶어 말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회관에 나가니 뜨거운 물이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게 어느 이사님이 준비를 해 놓은 거였다. 


 난 그런저런 회장님이나 이사님의 마음 씀을 보며 마음속에선 이미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 꿈꾸어 왔던 그런 모습을 회원들이 같이  만들어 가며 즐길 수 있겠다 싶어, 노년에 만난, 내 삶을 채워 줄 삶이 아닐까 그냥 참 좋다.


 난 가끔 생각한다. 어린 시절, 살면서 어느 순간, 내가 내 안 어딘가에 ‘생각의 씨’를 묻어 둔 것이 어느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발현이 되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동안 잊기도, 무심히 세월이 많이도 흘렀네 싶었는데, 이젠 노년에 가슴 가득 느낄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짐은, 요즈음은 음악과 함께 분위기를 만들고 보니 예전에 ‘잔칫집’을 상상해 오던 이상으로 즐길 수 있음에 잔잔한 행복감으로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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