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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에 대하여

홍성자 2022-06-17 0

​기러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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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하늘을 나는 새지만, 오릿과에 속한 겨울 철새다. 


오리는 물위에 떠다니며 잠깐 잠깐 나는 걸 보았지만, 4만여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오리라고는 상상을 해 본 일이 없었다.


 소녀시절이었나? 나의 어머니는 어느 어른을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안항이 모두 몇 분이나 되시는지요?” 하는 말을 옆에서 들었다.


안항? 안항이 무슨 말인가? 나는 어머니한테 여쭈어보니 기러기한테서 온 말이라고 설명을 해 주셔서 70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있고, 이 어려운 말을 그때 알았다. 


남의 의좋은 형제를 이르는 높임말로 안항(雁行)이라 하는데,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감을 안항이라 하며, 늘 행렬(行列)을 지어 날아다니는 것이 의좋은 형제 같다하여 붙여진 말이란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깊은 심성을 엿보는 진면목이다. 


안항(雁行)이라 함은, 기러기 안(雁) 자에다 갈 행, 즉 줄 행(行)자를 쓰지만, 이 행(行)을 항렬 항 자 로도 읽는데 의좋은 형제를 안항이라고 한다. 


친족 간의 서열을 나타낼 때에는 ‘항렬’(行列) 이라 하고, 여럿이 늘어서 있는 줄을 나타낼 때에는 ‘행렬’(行列)로 읽는다. 


안(雁)자는 기러기가 나란히 나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기러기 안(雁)자는 원래 이 안(鴈)자를 썼는데, 언젠가부터 이 안(雁)자 즉, 편리하게 속자(俗字)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철새 기러기의 도래지가 여러 곳 있다. 


철원 쪽 삼부연 폭포근방이나 비무장 지대, 전남 순천, 경남 창원 등, 남쪽으로 갈대숲이나 논의 습지대, 갯버들군락지에서 살다가 간다. 


기러기는 가을의 전령사라 하여 보통 9월부터 10월까지 한국에 와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고향을 찾아 그 먼 북쪽나라로 다시 가는 철새다. 그들의 고향이며 목적지인 북 유럽, 북미의 대륙을 포함한 시베리아 동부의 호수나 습지 등이 고향이란다. 


기러기는 나이가 제일 많고 힘센 리더를 중심으로 “V” 자를 유지하며, 삶의 터전을 찾아 목숨을 건 모험으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기러기의 기나긴 이동 중에 매서운 강풍이나 눈보라,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갑자기 나타난 비행기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으며 가는데 다치거나 죽는 숫자도 많다고 한다. 철따라 이동하며 살아야하는 철새들의 숙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에서 날아가는 리더의 날개 짓은 상승기류를 타기 위해서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의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이 혼자 날 때 보다 70% 정도의 힘만 쓰면 따라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가며 힘 있는 기러기가 대장 노릇을 하는데 책임과 희생정신이 없으면 앞장을 설 수 없다. 또한 대장은 항로를 잡아 날며 이미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의 도래지를 본다. 대장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이유다. 


기러기는 체중을 줄이려고, 즉 살찌지 않으려고 살과의 전쟁을 하는 새다. 장거리를 나르려면 몸이 가벼워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울음 같은 소리를 내면서 간다. 그것은 우는 소리가 아니라 앞에서 힘겹게 날아가는 리더에게 보내는 화답이며, 응원과 격려의 소리로 예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V 자로 가다가 때로는 일(一) 자로 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앞서 가는 기러기가 힘들고 지치면 그 뒤의 기러기가 앞으로 나와 리더의 역할을 바꾸는 의식이라고 한다. 또 바뀐 리더 기러기가 힘들고 지치면 다시 리더를 바꾸면서, 나침판도 없고 네비게이션도 없으며 레이다도 없이 그 먼 길을 나는 것이다. 두 날개가 기계도 아닌데 얼마나 아프고 힘 들까?


낮에는 태양을 보고 밤에는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찾아 간다는데, 정확한 학설로 나온 것이 아니라며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울음소리 같은 그 소리로 그들의 건강 척도를 가늠하고, 만일 어느 기러기가 아프거나 지쳐서 혹은 총에 맞거나 이 대열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동료 기러기 두 마리도 함께 대열에서 이탈해 지친 동료가 원기를 회복 할 수 있을 때까지, 또는 죽음으로 生을 마감 할 때까지 마지막을 함께 지켜주다가 뒤 따라 가서 무리와 다시 합류 하게 된단다. 


땅에서 모이를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꼭 파수 보는 보초기러기를 두어서 경호를 하며, 위험에 처했을 때는 이들만의 약속된 경계음으로 위험을 알린단다. 기러기한테서 헌신과 책임, 동료애를 본다. 


미물인 기러기도 이러는데, 나는 가까이에 사는 어려운 분들을 외면한 때가 그 얼마였나?


예전의 결혼식에는 목안(木雁)이라 하여, 나무로 만들어 채색을 한 암수 한 쌍 기러기를 앞에 두고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평생 금슬 좋게 살라는 의미로 행복한 결혼의 표시가 되기도 하였다. 기러기의 수명은 보통 15- 20년 인데, 짝을 잃으면 결코 다른 짝을 찾지 않고 사랑의 약속을 죽을 때까지 절개를 지킨다는 기러기다. 


캐나다는 기러기가 아주 많다. 연못, 바닷가, 호수에서도 기러기 무리들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날 때에는 부부 한 쌍이 함께 나르는 것도 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재미있는 것은 옛 조상들이 ‘그럭저럭’ 운다고 기러기라고 했다 한다.


요즘에 신조어 중에 ‘기러기 아빠’ ‘기러기 가족’ 라는 말을 듣는다. 자녀교육을 위하여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외롭게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 하는 아버지를 말함이다. 


한분이 세상을 떠나 홀로된 사람을 ‘짝 잃은 기러기’라고도 한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시인 박목월의 ‘통곡 시’라 불리는 ‘이별의 노래’가 있다. 박목월씨의 눈에는 자기의 사연 때문에 기러기가 울면서 가는 걸로 보는데, 내가 슬프면 세상이 다 슬프게 보이기 때문일까?


내가 좋아하는 기러기! 작은 두 날개로 머나먼 수만리 길을 떼를 지어 나는 것이 그 얼마나 씩씩하고 장쾌한 일인가! 


기러기의 삶을 보면 어찌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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