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시는 날, 조종(弔鍾)이 울리고 운구차(運柩車)가 명동성당을 떠나던 그때 이를 지켜보는 시민 모두는 모자를 벗어 흔들며 고개 숙여 전송하였고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의 영면(永眠)에 만수무강을 비렸으며 여성신자들도 머리에 쓴 미사포를 벗어 흔들며 성인(聖人)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다 가신 추기경님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며 서울과. 팔도강산은 읊었답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지만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시며 기쁨과 미소의 천국에서 많은 성도와 함께 우리를 향하여 더 지워지지 않을 사랑으로 부활하실 것입니다.
음지의 등이요, 빛과 희망이 되어주셨던 당신, 당신은 명동성당을 작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가슴마다에 영원히 둘 아닌 하나가 되어 “너희와 모든 이를 향하여” 라는 추기경님의 사목(司牧)처럼 더 높이 그리고 더 넓게 미래의 어두움을 밝혀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나는 바보야, 나는 바보야” 하셨던 추기경님의 너털웃음 섞인 농담 속에서도 그 말씀은 국민을 가까이,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훌륭하신 추억이 되었고 더불어 변치 않을 식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시는 날은 하늘도 읊었답니다.
새벽녘부터 명동성당에 내리는 하얀 눈발은 왠지 그리 차갑고 또 쓸쓸해 보였지만 그러나 이는 마치 하느님이 내려준 은빛 찬란한 지상의 보화(寶貨)처럼 아름다워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펴고 눈발을 가리며 묵묵히 길게 또 길게, 기도행렬들은 떠나지 않고 수많은 성도의 발걸음마다 국민(國民)과 순교자(殉敎者) 모두의 묵념과 눈물 속에서는 더 편안(便安)하게 더 따뜻하게 무한한 행복의 천국(天國)에서 당신의 영면(永眠)을 빌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펄럭이는 플레카드의 어록(語錄)처럼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어 영원히 잊지 않을 당신의 신자(信者)가 되겠습니다. 더 오래, 더 높이, 더 멀리서라도 우리 모두의 아픔을 달래주소서, 더불어 당신이 가시는 날에 당신이 더 그리워 우리 모두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지금도 기도를 드리옵나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추기경님의 둘도 없는 훈훈한 사랑의 고랑마다에는 더 복된 내일이 열려오길 빌어봅니다.<아멘>
상기(上記)의 글은 국가상훈편찬위원회 편집국장 김무진 선생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 하셨을 때 쓴 글인데, 지난해 “프랜체스카” 교황님이 오셨을 때 제가 지은 “살포시 즈려 밝고 가소서”와 얼마 전 소천 하신 통일노래를 작곡하신 안병훈 선생님을 위해 지은 저의 “통일노래” 시조를 보시고는 “국가공훈인물대전”에 수록함을 제의 해오셨는데, 제가국가를 위해서 한일이라곤 대모 밖에 없는데, 감히 입적 할 수 없어 거절을 하였더니 아쉬움을 표하며 저의 이름 석 자에다 삼행시를 지어 보내 왔습니다.
정충모 삼행시.
정: 정성 들여 심고 가꿔 한국 땅에 심은 화초
충: 충정군인 명패답게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모: 모정만은 잊지 마오 금수강산 초추의정.
정 선생님의 지조 (志操)와. 시조에 감동하여 삼행시 한 편 드립니다. 서울에서 異國까지 시인님을 찾아서, “국가상훈편찬위원회 편집국장” 김무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와 같이 김무진님께서 시인회원명부에”발췌(발췌)했지만, 미개한 제가 어떻게 이 엄청난 자리, 명단이 올라가겠습니까? 완강히 거부했더니, 정충모시인의 아름다운 정신이야 말로 너무나 감개무량해 선생의 이름에다 삼행시를 지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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