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뒷마당을 나갈 때마다 한참 동안 깻잎을 들여다본다. 캐나다의 넓은 하늘 아래, 토론토의 바람 속에서 자라난 깻잎은 분명 평범한 채소이지만 내게는 깊은 울림을 준다. 화분에서 자라는 몇 포기에 불과하지만, 잎은 제법 무성하여 여름 내내 입을 행복하게 해 주더니, 요즘 들어서는 부쩍 고국의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이웃집 로쓰(Ross)가 얼마 전에 우리 집 뒷마당에 와서 생깻잎을 맛보고, 엄지 척을 하고 간 이후이다.
“이게 뭔데 이리 잘 자라냐?” 로스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화분에 수북한 깻잎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내가 한 잎을 뚝 떼어 주며,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허브(herb)야. 냄새나 맡아봐” 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한번 흠흠하더니 다짜고짜 돌돌 말아서 입안에 넣는다. 나도 아내도 깜짝 놀라서 “이것을 먹는 외국인을 본 적이 없는데…” 하였더니, 이 친구! “나는 이탈리언이라서 뭐든지 먹을 수 있어” 응수하면서, 질겅질겅 씹는가 싶더니 “So delicious, so delicious!”를 연발한다.
로쓰는 이탈리언이다. 키가 작달막하니 땅땅하여 남부 출신으로 추정하는데, 이들은 손재주가 많아서 로마시대의 아름다운 조각과 건축물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그 후손들이 여기 캐나다에서도 건축 일이나 요식업에 주로 종사한다. 로쓰도 조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그의 입맛 역시 뿌리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집의 늙은 측백나무 담장을 헐어내고 삼나무(Cedar) 목책으로 바꾸는데, 조언을 해주러 왔다가 깻잎을 시전(始展)한 것이다.
뿌리 있는 미각을 가진 친구의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보니, 기억 저 편에 자리잡고 있는 정반대의 기억이 해초처럼 떠올랐다. 십여 년도 더 된 일이지만, 큰 아들이 미국에 취업이 되어 토론토를 떠나기 전에 동창들 몇 명을 초대했다. 뒷마당에 둘러앉아 바비큐 파티를 하는데 코리안 푸드는 뭐니뭐니 해도 쌈이라면서, 아들이 쌈 싸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재미있어 하면서 상추에 된장까지 발라서 맛있게 먹는데, 아무도 깻잎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개중에는 중국, 필리핀애들도 있어서 당연히 깻잎 쌈도 즐길 것으로 생각하여, 아내가 나서서 권하였다. 그랬더니 어럽쇼! 아주 희한한 답이 돌아왔다.
깻잎은 냄새도 강하지만, 잎 뒷면에 털이 있어서 disgusting (혐오스러운) 하다는 것이었다.
'오마나! 너네 나라는 향이 훨씬 더 강한 음식도 많던데…'
깻잎에 털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깻잎의 독특한 향,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서양애들도 많이 아는 고수(cilantro)하고도 다른 그 향은 한국인에게는 중독적인 친밀감이 있지만, 낯선 이에게는 때때로 강하고 불가해한 냄새로 다가올 수도 있다. 입 안 가득 번지는 깻잎의 향은 한국인에게는 미각을 넘어서는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한 조각의 선율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의 공기, 여름의 더위와 가을의 수확까지 한꺼번에 불러낸다.
반대로 낯선 사람들에게는 마치 생소한 민속 악기의 음처럼 이질적으로 들릴 것이다.
바로 그 ‘향의 이질성’이 어쩌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K- Food가 지금처럼 대유행을 해서 지구촌을 덮는다 해도, 깻잎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가름하는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
깻잎은 한국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웃 일본도 중국도 기름이나 향신료로 살짝 사용은 하지만, 우리처럼 잎 채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깻잎은 상추와 함께 고기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장아찌와 김치로 변주되며, 막장에 찍어 밥을 싸 먹으면 그 자체로 ‘밥도둑’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기도 한다. 깻잎을 썰어서 탕에 넣어 잡내를 잡기도 한다.
화려한 과일이나 귀한 고기처럼 밥상의 주인공으로 자리하지 않으면서도, 식사 분위기를 은근하게 지배하는 배경음악과도 같다. 소박하지만 맛을 돋우니 그 힘은 강하다.
그래서일까! 몇 해 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깻잎 논쟁’은 그 소박한 잎의 무게를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연인이 식탁에서 다른 사람의 깻잎을 잡아떼어주는 행동이 과연 허용 가능한가 아닌가, 질투와 배려, 사랑과 예의가 그 작은 동작 하나에 압축되어 있었다. 코미디의 소재가 되고, 극의 플롯이 되고 밈(meme)이 되어 뒹굴며 한국사회를 자지러지게 한 주인공이다.
그런가 하면, 깻잎 한 장 차이로 비유되는 아쉬움, 그 두께로 표현하는 가까움과 멀어짐의 미묘한 경계도 있다. 깻잎 한 장은 얇고 가볍다. 하지만 그 경계의 결과가 너무 크다 보니 되돌아보며 아쉬움을 달래는 대리 표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깻잎의 존재는 가히 ‘깻잎 랩소디(Rhapsody)’라 할만하다.
즉흥적이지만 서사가 있고 자유롭지만 감흥이 있는 음악처럼, 한국인의 맛과 정서를 잘 대변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를 먹을 줄 아는 민족이며, 그들을 따라 지구촌의 웬만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수많은 층위의 이야기가 마치 깻잎 장아찌처럼 겹겹이 쌓여 간다.
밥상 위 풍경, 가족의 정, 연인의 갈등과 질투, 실패와 성공의 아쉬운 차이, 그리고 고향의 향수, 이민자의 정체성까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뒷마당으로 나가 깻잎을 쓰다듬는다.
캐나다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손끝에 닿는 그 부드러운 결은, 단순한 잎사귀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기억이자 문화이며 정체성이다. 그 잎은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내게 속삭인다.
‘너는 어디서든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다음해 봄에는 깻잎 한 포기를 이웃집 Ross에게 선물을 할 생각이다. 그 친구에게 깻잎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향이라도 전하여 이국의 이웃에게 한국인의 정을 뿌려 볼 생각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