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라는 걸 언제부터 알고 마시기 시작했을까 돌아보니, 고등학교를 서울로 올라와 시험 때가 되니 어떤 애들은 각성제를 먹고 시험공부를 한다기도, 어떤 애는 애들은 마시면 안 되는 건데 커피를 마시며 공부를 한다고 했다.
뭔지도 몰랐던 귀한 물건? 을 68년 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던 해에 식구가 모두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 어느 날 미제 물품을 갖고 다니는 아줌마가 집에 갖고 와서 짙은 갈색 가루가 유리병에 담긴 걸 언니가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커피라고 사긴 했는데 어떻게 마시는 줄 몰라 그때 그걸 집에서 마셨는지 기억은 희미하다. 그 후 대학에 입학하고 친구와 다방엘 다니면서 그때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는 커피를 프림과 설탕을 같이 가져다주면 각자 알아서 타서 마셨다. 그러고 보면 커피가 뭔 맛일까 알고 마시기나 했나 싶다.
그 시절엔 커피나 홍차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쌍화차에 계란을 동동 띄워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커피는 다방이나 가야 마시던 흔하지 않은 기호식품이었는데, 내가 결혼을 하고 캐나다에 사셨던 큰아주버님이 한국에 나오시면서 커피와 파운데이션을 갖고 나오셨다. 그렇게 갖고 오신 커피를 몇 스푼 넣는지도 모르고 너무 진하게 탔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만 해도 친척 중에 외국에서 나올 때는 코코아 초콜릿이나 커피 여자들 화장품이 인기를 끌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저렇게 커피 맛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시다가 큰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거기서 만난 자모 중에 재용이 엄마가 타 주는 커피 맛은 지금도 삼삼하다. 똑같은 커피 설탕 프림인데 그 맛이 다름은 재료의 배합 비율에 있었음을 말해 무엇할까.
돌아보니 시나브로 커피를 마셔온 세월이 55, 6년이 된다. 때론 커피 맛을 알고 즐기기도, 습관적으로 마시기도, 밥 먹고 나면 집에서나 친구들을 만나면 으레 찻집엘 가는 게 극히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으니,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도 그게 커피 때문일 것이란 생각도 못 하고, 아니 나중에 잠을 설친다 해도 커피는 마셔야 하는, 커피 마니아는 아니어도, 커피 중독증에 걸려 있다는 걸 요즈음 새삼 깨닫는다.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 커피숍을 가서 주문을 하려면, 난 커피를 마시면 밤을 ‘꼴딱’ 새운다며, 그렇다고 티는 마시고 싶지 않아 망설이며 나는 어떠냐고 묻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자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 같기도, 설령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해도 커피를 마시고 싶은 유혹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 나중은 나중이고 그냥 커피를 마시겠다고 주문을 한다. 더러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다기에 나도 그럼 카페인이 없는 커피로 마셔볼까 주문을 하고 보니, 커피 맛이 약해서 밍밍한 느낌마저 드니 요즈음은 커피를 끊을 수는 없고, 디카페인으로 바꿔볼까 싶어 몇 번 디카페인으로 마셨는데도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니 이젠 불면증 처방전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커피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은 친구들을 만나면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런데 완전 은퇴를 하고는 혼자서 찻집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은 기분전환 삼아 밖엘 나가면서 그야말로 찻집에 앉아 노트북을 켜거나 책을 보기도 음악을 듣는 게 재미있는, 지루하지 않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루틴이었는데,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원인이 ‘커피’라면 내겐 일상의 즐거움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허전함이 밀려온다.
맥도널드나 팀호튼을 가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과 티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는 기분 자체가 달라진다. 커피를 오더하면서 싸이즈가 있으니, 사실 난 스몰 커피 정도면 남기지 않고 딱 마실 양이다. 하지만 스몰 커피를 주문해서 마시려면 커피를 마시는 멋은 즐길 수 없어 남길 줄 알면서도 미디움 커피를 마시며 나름 커피 마시는 ‘멋’을 즐기곤 했는데, 커피를 끊어야 할 상황이면 그야말로 삶의 낙이 없어진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하다.
그러고 보면 거의 60년 가까이 마시던 커피를 건강을 고려해서 커피를 끊으면 좋겠지만, 나름 혼자서도 자연스럽게 찻집을 드나드는 맛, 재미에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가 있었는데, 다 포기할 수는 없고 그나마 밍밍한, 맛도 느껴지지 않는 디카페인 커피라도 마셔야 하지 않나 요즈음 찻집엘 들어서기 전부터 고민에 갈등을 한다.
그러고 보면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 역시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생전에 남편이 반주로 한 잔씩 마시곤 할 때 나도 같이 대작을 해주길 바랐지만, 난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남편을 떠나 보내고 요즈음 가끔 사람들을 만나 건배라도 하고 싶어 술을 입에 대는 정도이니 앞으로 그마저도 끊어야 한다면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커피를 끊어야 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커피를 끊어야 하나 생각이 미치니 남편이 생전에 타주던 커피 맛이 더 생각난다. 가게를 할 때 토요일은 아버님 어머님 편히 식사라도 하시라고 작은 사위가 가게를 몇 시간 봐 주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 날은 남편이 커피와 빵을 준비해서 따끈할 때 마시라며 가져다주곤 했다. 우린 커피 취향도 같아서 달달하게 빵까지 몇 쪽 구워서 들고 오더니 커피를 끊어야 하나 싶어지니, 맛있게 마셨던 추억으로 남겨진 ‘커피 맛’이 더더욱 그리워지는 날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