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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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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나운택 2024-09-20 0

돌부리

나무뿌리

진흙탕

오르막길

내리막 계단…

넘어질세라 미끄러질세라

한 순간도 고개를 들 틈이 없이

발 밑만 내려다보며 바삐 걷는 나그네


잠시 가던 걸음 멈추고 고개 들어보면

연초록, 진초록빛 나무들 무성하고

계곡엔 맑은 물이 졸졸졸 흐르고

이름 모를 새들 노래소리 귓가를 스치고

하늘엔 뭉개구름 한가로이 흘러가는데

홀로 온몸이 땀에 젖어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숲길 모퉁이에 불쑥 나타난 돌무더기

그 위를 얼기설기 덮은 오방색 장식을 단 나무움막집

수천년 전부터 이 지역 원주민들이 영혼을 정화하고 치유하여 

새로 태어나는 의식을 치른 곳(madoodiswan: sweat lodge) 

잠시 그 속에 들어가 앉아 수천년전 그 원주민들을 생각해 본다

지극히 단순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했을 그들은 어떤 욕망을 좇아 살았기에 

이렇게 영혼을 정화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을 치뤄야 했을까?

수천년을 그렇게 끊임없이 정화하고 치유하며 살아오다 

어느날 졸지에 총칼 든 외지인에게 쫓겨난 저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런 의식을 행하고 있을까?


길가에 쓰러져 썩어가는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운다

다시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길 옆 공터에 피크닉테이블 대여섯 개가 놓여있는 멋진 휴식처가 보인다

바로 지척에 이렇게 멋진 시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썩은 나무등걸에 쭈그려 밥을 먹고 

들려오는 새소리 물소리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여나 자빠질세라 발끝만 내려다보며 터덕터덕 걸어가는 저 나그네

그대 어딜 그리 서둘러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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