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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다

김채형 2025-08-08 0

‘왜 내가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인간성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내가 캐나다에 이주한 초기에 영어 클래스에서 선생에게 한 말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푸념 정도의 대꾸가 아니었다. 낯선 땅에서 끊임없이 변할 것을 요구 받는 나의 내면에서 터져 나온 일종의 절규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빚어졌다. 그 안에는 조상 대대로 이어진 내 가족의 고유한 얼이 스며들어 있다. 그게 바로 세상에 처음 타고난 꾸밈없는 나였다. 

물론 그 ‘나’라는 인간성은 미숙하고 부족한 면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가정 교육-어릴 적부터 밥상머리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엄격한 가르침,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학교 교육을 통해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그것이 남편과 결혼하기 전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결혼 후, 내 삶은 또 다른 변곡점을 맞았다. 남편과의 성격 차이에서 오는 마찰, 시부모를 모시며 겪었던 갈등, 그리고 아이들을 키워내면서 얻은 수많은 인생 수업이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켰다. 

게다가 교회에서 받은 신앙 교육과 기도 생활, 신자들과의 교류 속에서 나는 또다시 그 공동체에 맞춰 다듬어졌다. 심지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도 나는 때때로 본래의 나를 내려놓고 달라져야 했다. 

캐나다에 이민 온 후에 또다시 ‘변해야 산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변하고 변해도 아직 남아있는 내 안의 모난 부분, 혹은 이기적이라 여겨지는 성격을 고쳐야 한다는 요구 앞에 나는 지칠 지경이 되었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인간성을 발전시키기 위한 1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독서를 많이 해서 흥미와 관심을 넓히라.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라. 자기 의견을 가져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라. 너만의 독특한 사람이 되어라. 긍정적인 인생관과 자세를 가져라. 재미있고 삶의 유머러스한 점을 보라. 다른 사람들을 도와라. 다른 사람들을 정직한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나는 위의 열 가지 조언을 거울삼아 나 자신을 비춰보았다. 인간의 완성이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완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고 그저 더 원숙해지기 위해, 혹은 주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잠시 ‘원숙함’이라는 단어와 나를 둘러싼 세상의 요구를 떠올려 보니, 가슴 깊이 피로감이 밀려왔다. 이 나이가 되도록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훈련과 교육을 거쳐 왔는데 또다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하며 나를 바꾸려 하니 도대체 언제쯤이면 누구에게도 구애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왜 나는 이토록 계속해서 변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만의 도덕과 윤리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쓰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참을 줄도 안다. 양보할 줄도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완벽하게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게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때때로 멍청해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무방비 상태가 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말을 들을 때, 꼭 해야 할 말을 입 속으로만 맴돌다 결국 포기해 버린다는 사실이다. 번번이 당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미숙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왜 이토록 허약한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정녕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 자신을 그토록 변화시키고 갈고 다듬었는데 정작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익히다 보면, 문득 내 인생의 주인인 ‘나’는 사라지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몰라 불안감이 엄습한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보다 잘났어요.’ 이곳에서 세탁업을 하는 어느 여주인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다른 이들은 점점 커지는 게 이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이란 말인가. 그건 종교에서 말하는 성인이나 가는 길이 아닐까, 왜 세상은 평범한 내게 성인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일까. 시원한 대답은 없고 다시 물음만 남았다. 나는 그저 나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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