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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홍성자 수필집

당찬인생(2)

홍성자 2021-10-07 0

  (지난호에 이어)


조금 빗나간 이야기지만, 약대를 졸업한 아들이 서울 변두리에 약국을 개업했는데, 시골에서 사는 70대의 아버지가 축하 차 올라오셨다. 진열된 약들을 자세히 훑어보시는 아버지를 보고 아들은 아버지께 뭘 찾으시느냐고 물어 보니, 글쎄 그게 안 보이네 하시더라는 것이다. 그거라니요? 남자가 나이 들면 찾는 게 있어, 아들이 눈치를 채고, 속으로 아버지는 나이 70이 넘으셨으면서 하고 아주 가벼이 픽 웃어 넘겼다 한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70이 넘고 보니, 그때 멋쩍어 하시던 아버지를 늙었다고 생각만 했지 남자라는 사실은 전혀 생각지 못했었고, 아버지를 무시했던 그 일이 후회막급이었다고 고백하더란다.  


  30여 년 전에 한국에서 들은 효자이야기다. 

아버지가 학교교장으로 정년퇴직 하실 즈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다행이 삼남매는 모두 결혼 시켰고 아버지는 재혼 하셨는데, 새 부인과 말없이 잘 사시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의사인 큰 아들은 새 어머니에게 5백만 원, 천만 원 ....... 가끔 돈을 드렸다는 것이다. 

“어머님, 우리 아버지 잘 모시고 살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면서.  


  내가 아는 당찬 분이 있다. 필리핀 여자 마사지사다. 

아들 둘에 딸 둘, 사남매를 기르던 중 젊어서 남편을 잃었고 큰 딸이 필리핀에서 결혼하여 아이 셋을 낳고 이혼했다는데, 이혼한 사위는 아이들 부양비도 안대주면서 재혼 했다하고, 큰 딸은 세 아이들 데리고 캐나다 엄마 있는 곳으로 가고자 해도 이혼한 사위는 가끔 아이들을 봐야 한다며 안 된다고 한단다. 그 일에 있어서 필리핀은 그렇게 되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큰 딸이 필리핀에서 일은 하지만 세 아이들 키우고 살기에는 경제적으로 퍽 어렵다고 해서, 엄마가 이곳 캐나다에서 마사지해 돈 벌어 큰딸한테 캐나다 돈으로 한 달에 천불씩 도와주는 일이 몇 년 되었다고 한다. 

  둘째 딸은 결혼하여 이곳 토론토에서 엄마 집 가까이 사는데, 하루는 작은 딸이 이 일을 알고 

“엄마, 나는 딸이 아니야? 왜 언니만 도와줘요? 똑같이 해 주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딸도 보통은 아니렸다.

  이 당차고 다부진, 당당하고 대찬 엄마가 

“내가 번 돈, 내 돈인데 네가 왜 참견이니? 내 맘대로야, 나 죽기 전에 내가 번 돈 내가 다 쓰고 죽을 거다, 너도 내 입장 되어 봐.” 

  부아가 치밀어서 내 뱉었다고 한다. 뼈가 으스러지게 번 돈, 이런 돈도 자식들은 늘름거린다며, 이렇게 안하면 자식들한테 꼼짝 못하고 바보 된다고, 당차고 야무진 엄마다. 

  둘째 딸은 벼르고 별러서 용기 내어 한 말인데, 하고 보니 일이 우습게 되었다. 엄마가 망설이고 미안해하며 벌벌 떨 줄 알았는데, 늙어 가면서, 대답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것이다. 

  엄마는 각오했다고 한다. 내가 죽을 때 자식한테 의지 하지 않겠다는, 즉 나는 자식이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산다고 했다. 남편 죽고 혼자서 네 아이들의 뒷바라지가 끝나지 않는다며 내 인생은 언제 찾느냐고, 재혼은 언제 해보느냐고, 나도 외롭다며 한숨소리가 땅이 꺼진다. 

  내가 자식들을 잘못 키웠어요, 왜 다 그 모양인지? 60이 다 된 이 어미 마사지해서 살아가는데, 그냥 두지 못해 안달이예요. 제가 왜? 자식들을 생각 안하겠어요, 이렇게 까지 해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죽기까지 독한 맘먹는단다. 자식 없기로 하면 세상에 자식 없는 사람이 어디 나 뿐이겠느냐고, 당찬 엄마다. 

 

  논에 사는 우렁이가 알을 깨고 나오면 어미 살을 파먹고 산다는데, 에미 우렁이 죽은 빈 껍질만 물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의 부모님들을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식이 잘 살면 저 잘나서 잘 사는 줄 알고, 못 살면 부모 원망이나 하고, ‘무자식 상팔자’라는 한국의 옛말을 필리핀 사람들도 하다니, 이 말이 거의 명언이 된 세상이다. 

  전에 한국에서 친구 시어어머니가 한 말이 생각난다. 

“호랑이가 무서워요? 자식이 무섭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못사는 자식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어미의 애달픈 심정을 자식은 헤아릴까. 어렸을 때부터 온전치 못한 자식을 끌어안고 평생을 눈물로 기도하며 사는 부모가 있지 않은가.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랴! 

  부모들의 우여곡절 슬프고도 재미있는 당찬 이야기들을 여기 지면에 다 쓸 수는 없지만, 나는 많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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