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관련으로 한국에 쥐방울 드나들 듯 한지 어언 십여년 만에 모닝캄 평생 프리미엄(Elite Plus Lifetime Status) 회원이 되었다. 유난스럽게 대한항공만을 고집하며 120여회 넘게 탄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거리 여행길에 편안한 위로를 주는 기내식이 제일 큰 이유이다.
한국과 토론토를 오가는 항공편의 기내식에는 세 끼니의 정식이 있고, 수시로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있다. 다른 항공편에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한국음식 정식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라면 간식, 이 두가지에 꽂혀서 오로지 KAL만 고집해 왔는데 올해 8월 15일부터 라면 간식은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상 이변에 따른 난기류의 잦은 출현으로 승객의 화상 위험 등 안전 문제라고 하니 수긍은 하지만, 커피나 차 등은 여전히 뜨겁게 공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머리가 갸우뚱 해진다.
나는 지금도 이 두가지 서비스를 기내에서 접했을 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언제인가, 토론토 행 비행기 안에서 무료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여승무원이 다가와서 비빔밥이 막 기내식으로 나왔는데 반응이 좋다면서 권하였다. 한국 체류기간 동안 한식은 이미 입이 닳도록 먹었던지라 떨떠름하게 식판을 받아 들었는데, 한눈에도 가짓수가 좀 많다 싶어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추장과 참기름, 이쑤시개까지 세팅되어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뜨거운 미역국까지 서빙을 해주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중국으로 때론 남미나 유럽으로 날아 다녔지만 다른 항공사의 기내식은 그저 그만해서 특별히 기억이 나는 것이 없는데, 이 비빔밥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밥 알 한 톨 안남기고 먹어 치운 후에 그 여승무원에게 물었었다. “나는 참 좋은데, 이걸 외국인들도 좋아하나요?” “요즘은 비빔밥이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서 손님의 절반 정도는 이걸 찾으세요”
이 비빔밥 기내식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출시 다음 해부터 국제적인 기관의 상을 휩쓸었고, 미국의 유명한 여행 전문지인 트래블 앤 레저(Travel and Leisure)와 CNN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내식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승객들이 전통 한국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칭찬하며,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한항공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금은 한식메뉴가 비빔국수, 낙지덮밥, 곤드레밥, 버섯밥, 낙지소면 등으로 확장되어 한국 음식의 다양성을 알리는 역할도 하면서,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 승객들에게는 ‘비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러한 기내식의 성공신화에는 간식으로 제공하는 라면도 큰 역할을 한 것임을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공짜로 먹을 수 있는 K-라면의 경험은 국제선 승객들에게 역시 획기적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한국 특유의 칼칼함과 얼큰함을 가진 이 감칠맛 나는 라면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 대해 외국인 승객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하기도 했다.
아내와 동반하여 한국으로 가는 편에 내가 컵라면을 시켜 먹었더니, 옆자리의 여자승객이 아내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저거 얼마짜리냐?”고 물어 왔다. 공짜라는 답변에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면서 얼굴이 달덩이처럼 밝아졌다. 이후 공짜 라면을 먹으면서 사진을 찍어대며 행복해 했다. 틀림없이 이 간식 서비스는 그녀의 수많은 친지 친구들에게 소개되었을 것이다.
기내에서 차가운 간편식 하나를 식혀도 돈을 받는 여타 항공사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서비스였던 것이다.
이 라면은 처음에는 프리미엄 좌석에만 제공되어 '하늘 위 별찬'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는데, 일반석으로 확대되면서 K-라면을 세계에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초기에는 양이 제한되어 서둘러 시켜야만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 같아서 한국인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해준다.
경쟁사인 다른 외국 항공사에서는 국적 모를 심심한 라면을 한끼의 정식으로 제공할 뿐이다.
국적 항공사의 이러한 도전(?)은 단순히 기내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음식에 대한 글로벌 홍보로 이어진다. 즉, 많은 외국인 승객들은 기내에서 한국 음식을 접한 후, 한국 식품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되어 여행 중에는 한국 음식이나 한국 식당을 더 찾아 다니게 될 것이고, 여행 후에도 한식을 즐기기 위해 그들 나라나 지역의 한국 식당이나 슈퍼마켓을 방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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