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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자 2025-01-17 0

난 사실 어린 시절부터도 꿈이라는 게 별로 없었다. 고작 장차 사모님이 돼야지 싶었고, 차츰 여사장이 돼야지 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방학 동안에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가는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가며 막연히 국회의원이 되어 그 비포장도로를 포장도로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오히려 대학 시절엔 장차 현모양처, 사모님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란 걸 하고 보니 사모님은커녕 밥 짓고 빨래 청소하는 집안의 가정부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올 때가 많았다.

그러니 애들이 어릴 때 나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난 거의 언제나 무력감에 젖기도, 쓸모없는 인간인 것 같은 생각이 더 짙었다.

내가 늘 뭔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아는 남편이, 대리점 한 군 데를 더 하게 되면서 나를 대표라는 직함을 주면서, 결혼해서 거의 12년 만에 사회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니 뭔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긴 한 것 같은데, 욕구가 채워지지는 않았다. 대리점은 경리가 따로 있었고 남편이 있으니 내가 하는 일은 별로 없고, 친구들을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며 문화센터에 나가서 뭔가 강의를 듣는다고는 해도 허전한 마음은 채울 길이 없었다.

아무런 갈망도 채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민을 오게 되었다. 이민을 오고 처음엔 영어학교에 다니며 또 다른 생활에 1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민 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파산선고를 하고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도 막막했었다.

그러면서 그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었다. 처음엔 글인지도 모르고 속에 있는 얘기를 토해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뭔가 한 편 두 편 쓰다 보니 온통 글 쓰는 데만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뭔가 쓰다 보니 차츰 분량이 많아져 책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20년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나름 책은 6권이 나오고 보니, 나중에는 뭘 생각하는 것도, 글을 쓴다는 건 생각도 하기 싫고, 오직 쉬고 싶다는, 오죽해야 머릿속에 생각이 오락가락할 때면 차라리 명상을 해야지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즈음 펜클럽 회원들이 중앙일보에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난 그야말로 펜클럽을 탈퇴하고 싶을 만큼 글 자체를 생각도 하기 싫어 펜클럽 회장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뭣 때문에 저렇게 감행을 하나 미운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펜클럽 회원들이 동인지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난 속으로 뭔 동인지, 회원도 몇 명 되지 않는데, 게다가 각자 시는 5, 수필은 4, 소설은 한편으로 제한을 하고 있으니 얇은 책자 정도가 될 터이니 난 선뜻 반겨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회원들이 단체로 하는 일이고 협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회원들의 작품을 부회장이 편집을 해서 출판사에 넘기기로 했다. 그 후 출판 비용이 거론될 때면 당초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초과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계산을 하고 보니 글 한 편당 백 불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또, 마음이 불편해져 회장의 고집, 뚝심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회장이 그렇게 강행을 하니, 중앙일보에 회원들의 글이 게재도, 다시 또 동인지까지 출간하는 결실을 보기도 하니 나중에는 회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글이 쓰기 싫어 꾀가 나고 힘겨워할 즈음 등산 동호회에 나가게 되면서, 거기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으면서 그동안 거의 슬럼프에 빠져있다 싶어 써지지 않던 글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동호회에 나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 책이 참 요긴했다. 그것은 그동안 책이 6권 나오고 벌써 8년이 되었으니 누구를 만나도 내 책이 여분이 없어 책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펜클럽에서 나온 동인지가 회원들에게 나를 소개할 좋은 기회가 됐다.

돌이켜 보니 펜클럽 회장의 의지가, 등산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되면서 내겐 확실한 마중물이 되었다.

그래서 그 여세를 몰아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강아지들의 얘기를 묶어 작년에 다시 퍼피 에세이 2권을 출간하는 결실을 보게 됐다.

글쓰기란 내겐 숨쉬기와 같기도, 속풀이 친구 같기도, 무료한 일상에 젖지 않아도 되는 놀잇감, 삶을 정진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나이 듦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만큼 행복한 그런 삶을 살 수 있겠다 싶으니 참 대단한 행운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 너 글은 왜 쓰니, 그럼 그 많은 시간 뭘 하며 보낼 것이냐고 되묻곤 한다.

난 그동안 글을 잘 써보겠다고, 좋은 글을 써야지 한다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다만 문득문득 가슴속에 일렁이는 감정, ‘생각의 끈은 놓으면 안 되겠다 싶음은 그것은 바로 내 살아 있는 날들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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