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의 시간 가운데에서 성도님들이 금식에 관하여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사순절의 기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종종 성도님들은 사순절에 이러한 금식에 관한 질문을 하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금식을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모습은 일년에 딱 한 번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입니다. 레위기 16장 29절의 말씀 가운데에서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라는 표현을 이사야서 58장 3절과 5절의 말씀과 연결되어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행동은 ‘금식’으로 해석되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금식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죄 용서함을 위한 회개와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금식은 울며 애통하면서 마음을 다하여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습입니다(욜 2:12). 하나님께서는 금식에 참여하는 자들이 형식적으로 옷을 찢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금식을 원하고 계십니다(욜 2:13).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금식을 행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들은 금식을 행하면서 머리를 갈대처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깔고 앉아 있었습니다(사 58:5). 그러나 이러한 금식을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금식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금식을 행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했고(사 58:3b), 자신들의 일꾼들에게 고된 일을 시켰으며(58:3c), 심지어 금식을 하면서 다투고 싸우면서 주먹질까지 했습니다(58:4). 금식에 참여하는 자들의 마음을 바라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금식을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금식은 회개의 모습 가운데에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사 58:6), 더불어 가난하고 연약한 친척과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입니다(사 58:7).
사순절이 되어지면 교회에서 금식에 관하여 많은 프로그램들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사순절 기간에 금식을 설명할 때에 ‘금식’이라는 단어 앞에 금식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추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미디어 금식,’ ‘일회용품 금식,’ ‘고기 금식,’ ‘종이 금식’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금식이라는 단어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금식의 시간에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기 위해서 미디어를 가까이 하지 않고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금식의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미디어 금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금식의 본질적인 행동의 의미를 해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금식을 언급할 때에는 금식에 참여하는 이유를 성도들에게 올바르게 설명해야 합니다. 만일 성도가 금식에 참여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면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간헐적 단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근 한국 기독교 단체에서 사순절 기간에 환경과 관련하여서 ‘보호’를 언급하면서 ‘금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용어의 적절한 사용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순절에 금식을 꼭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들은 스스로 대답해 보아야 합니다. 금식은 꼭 사순절 기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때에 참여해야 합니다.
(욜 2:12-13a)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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