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김태화 사장은 방문 당시에는 현대차 부품정비업소를 울란바토르에서 운영하고 있었으나 그 후 몽골현대기아 판매대리점을 운영하게 되었고, 2004년에는 몽골 자동차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실현하여 이른바 '자동차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아무튼 미리 연락을 해 놓았는지 얼굴은 검지만 말쑥하게 차려입은 몽골 청년이 공항을 나오는 우리를 보고 냅다 노랑색의 러시아제 4WD 지프차에 태우고 바로 출발했다. 하기야 얼굴 생김새가 자기랑 똑같이 생긴 네 사람 외엔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었으니 물어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북쪽으로 약 100여 ㎞를 4시간 정도 가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데 도로가 아예 보이질 않으니 이건 또 어찌된 일인가. 마치 이탈리아 폼페이의 벽돌길에 마차 두 바퀴 자국이 패여 있듯이 그 넓은 초원에 바퀴자국 두 줄만 보였고, 그 길만 따라가는 듯 했다.
군데군데 말라버린 개천을 건넜는데 그 바닥엔 석재로 쓰면 좋을 만한 돌덩이가 수북히 쌓여 있어 사륜구동차가 아니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지금은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편리해진 점은 있지만 예전의 그 낭만(?)은 사라져 버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약 두어 시간을 달려 갔을 때 굽이진 강이 있는 전형적인 스텝(steppe) 지대가 나타나 그 곳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길 없는 길을 달려오느라 이리 뒹굴고 저리 튕기는 통에 모두들 벌써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한 그루의 나무도 없는 민둥산(아니면 모래언덕)과 그곳을 휘돌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묘한 대조를 이뤄 색다른 진풍경을 보여준다.
강물은 보기엔 느릿해 보이지만 발을 담궈 보니 물살이 상당히 세고 빠르다. 몽골인 너댓 명이 어디선가 말을 타고 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연방 꾀죄죄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표정관리 하기에 바쁘다.
▲ 몽골리아의 굽이진 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스텝(steppe)지대 풍경.
어느새 수목이 없는 사막초원지대를 '스텝'이라 한다고 중학교 지리 수업시간에 들었던 것을 애써 기억해 내려고 끙끙대는 자신을 발견하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지금은 보이는 것 만큼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까지 오면서 길의 오름마다 돌무덤을 쌓아놓고 그 위에 굵은 나뭇가지를 꽂아 찢어진 파랑 비닐우산 쪼가리 같은 것을 걸쳐 놓은 곳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 푸른 천은 '하닥(Khadag)' 이라고 하는데 원래 하닥은 흰색, 노랑, 빨강, 녹색 등 여러 색깔이 있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파랑색은 푸른 하늘을 상징하고 나뭇가지는 우리의 솟대 같은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어워(ovoo)'라고 부르는 이 돌더미는 길의 이정표 역할도 하지만 가족의 안전과 안녕을 비는 우리의 서낭당 같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시계방향으로 세 번을 돌면서 돌을 얹고는 돈까지 꽂아놓는 바얀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단순히 샤마니즘이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자연과 교감하고 소원을 비는 신성한 의식이라 생각되었다.
여기서 모든 종교의 원시태(原始態)인 애니 미즘(Animism), 즉 정령신앙(精靈信仰), 물활론(物活論)을 엿볼 수 있다. 물활론은 자연계의 모든 동물, 식물, 자연물 등에 저마다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정령 숭배의 원시 신앙을 말한다. 광대한 초원에서 오랫동안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인은 친자연과 친환경적인 DNA가 생성된 것 같다.
몽골인 대부분이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믿는다는데, 천성적으로 정령신앙이 대단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런 종교를 갖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단순히 샤마니즘, 토테미즘 등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너무 사치스럽다고나 할까.
▲ 훕스굴 호수 가는 길목 오름에 있는 서낭당 돌무덤 '어워'. 이와 같은 풍경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심성 뒤에 무시무시한 잔혹성이 숨겨져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206년 테무진이 칭기즈칸이라 칭하고 몽골제국을 세워 서쪽으로 폴란드, 동으로는 우리나라 고려까지, 북으로는 시베리아에서 남쪽의 베트남, 인도 북부까지 세계의 1/4을 정복했을 때, 그가 지나간 자리엔 예외 없이 잔인하고 광폭한 싹쓸이를 통해 씨를 말렸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가 아닌가. 지금도 동유럽인들은 아이가 울 때 '몽골인이 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친다고 한다. 마치 우리도 어렸을 때 울면 '일본 순사 온다'고 했던 것과 같이 얼마나 혼겁을 집어먹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이러한 몽골의 유목 문화 속에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고, 남성미의 상징인 씨름경기, 말타기, 활쏘기 등을 통해 몽골 민족의 결속과 국가적 유대를 위한 상징이 오늘날 나담 축제의 의례와 관습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리라.
저만치 끝없는 초원의 산자락 밑에 듬성듬성 나타나는 겔의 지붕 위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어린 시절의 향수(鄕愁)를 불러 일으키고, 그 주변에 방목하고 있는 말과 양, 야크 등의 유유로운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몽골의 음악 중에 '흐미' 또는 '회메이'(Khoomei)라는 창법이 있다. 일명 '쓰로트 싱잉(throat-singing)'이라는 독특한 기교로 부르는 노래인데,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성대를 울려 입술 모양을 통해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그 음악이 딱 어울리는 그런 풍경이다. 마치 엔니오 모리코네의 '황야의 무법자' 주제곡에 나오는 'Jew's Harp'라는 악기의 희한한 연주처럼…. 어쩌면 이러한 황량한 스텝과 척박한 삶의 환경이 그런 음악적 기교를 창출해 낸 연원(淵源)일 게다.
다행히도 구닥다리 러시아제 지프차가 말썽없이 훕스굴 호수에 안착시켜 주었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만일 고장이 났을 경우 이 허허벌판에서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강요하는 혹독한 고문이었으리라.
▲ 필자가 하룻밤 묵은 몽골 훕스굴 호숫가 항가드 겔 캠프(Hangard Ger Camp)의 제1호 겔.
함께 동행한 바얀이 안내해 준 숙소는 호수 남쪽 끝 마을인 하트갈(Khatgal)에서 약 6㎞ 떨어진 남서쪽 호숫가 바로 옆 항가드 겔 캠프(Hangard Ger Camp)였다. 후덕스럽고 기품있게 생긴 한국아줌마 같은 여주인이 투숙객이 우리밖에 없었던지 가장 크고 좋은 1호 겔을 우리 부부에게 배정해 주었다.
여장을 풀자마자 보트를 타고 훕스굴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호수 서쪽에서 반대쪽으로도 가 보았다. 바얀은 가는 곳마다 어워를 찾아가서 지성을 드리고 시주까지 하느라 바쁘다.
남북으로 길게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의 눈'처럼 생긴 훕스굴 호수는 폭이 좁고 길이 136㎞, 수심 262m로 북쪽 끝이 러시아 국경에 맞닿아 있다. 크기는 우리 경상남북도를 합친 규모다. 원래 훕스굴이란 이름은 '푸른 물'이라는 뜻인데, 역시 민물호수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칼(Baikal) 호수와 함께 '자매(姉妹) 호수'(The Sister Lakes)로 불리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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