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미터가 넘는 호수바닥에 있는 자갈들이 보일 정도로 수정 같이 맑은 물은 시간대에 따라 색깔이 코발트색, 비취색, 남색 등등 형언할 수 없는 색조로 변한다. 스위스 알프스 산록에 있는 호수들의 물색깔이 대부분 초록비취색으로 보이는데, 물에 석회질이 많아 햇빛에 반사되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훕스굴 호수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청정호수 만의 신비한 색깔이다.
보트에서 바얀이 호수 물을 떠서 마시더니 운전기사와 함께 몽골노래를 부르다 말고 갑자기 당시 유행하던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기 시작했다. 몽골에까지 '한류'가 왔나보다. 아무튼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노래라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합창했다.
▲ 훕스굴 호수 남서쪽 산 정상에서 바라본 호수 정경. 한 가운데 퇴적층으로 이뤄진 자연섬이 '비너스의 배꼽'처럼 보인다.
캠프로 돌아와 승마를 했다. 마눌님은 이미 울란바토르에서의 경험을 살려 제법 잘 탔다. 우리는 걸어서 산으로 올라가 정상에서 호수를 감상했다. 아까 배를 탔을 때 둘러보았던 작은섬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자갈 등의 퇴적층으로 생긴 자연섬이 마치 '비너스의 배꼽'처럼 보였다. 주변엔 에델바이스를 비롯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느새 꽃은 우리가 되었고, 우리는 꽃이 되었다.
그런데 산을 오를 때 자꾸 미끄러졌었는데 살펴보니 그 원인은 흙이 아닌 굵은 모래, 즉 사토(砂土)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올라간 산에는 제법 번듯한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지만 정상에서 반대쪽을 내려다 보니 수목이 없는 스텝지대였다. 이를테면 삼각형의 꼭지점에서 수직으로 잘랐을 때 한 면은 산림지역이고 다른 한 쪽은 사막초원지대인 절묘한 형국이다.
몽골리아의 북서쪽, 더 정확히는 훕스굴 호수 북단 몽-러 국경 지역에는 높이 약 3,500 미터의 부렌칸(Burenkhaan) 산이 있고, 서쪽에는 4천 미터가 넘는 알타이(Altai) 산맥이 있다. 남쪽에는 고비 사막이 있는데 동쪽은 평원지역으로 중국을 향해 열려 있다. 정리를 하자면 서쪽과 북쪽은 산으로 막혀 있지만 동쪽은 뚫려 있으니 해마다 봄이면 고비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실려 동쪽으로 이동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황사(黃沙) 현상이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을 부려 놓는 것으로 생각된다.
▲ 몽골 훕스굴 호숫가에 나뒹구는 앙상한 나무등걸들
잘은 모르겠으나 훕스굴 호숫가에도 앙상한 나무등걸들이 시시각각으로 늘어나 뒹굴고 있다니 상당히 빠른 속도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하여 한·중·일이 합동으로 방풍림 조성을 하고 있다고 하나 그 속도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모두가 인간의 과욕이 빚어낸 반(反)자연의 재앙이리라….
9월 초인데도 밤엔 호숫가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겔 안의 한가운데 설치된 난로에 지필 땔감을 준비해야 한단다. 한쪽 켠 마당에서 여자애들이 가녀린 품으로 도끼를 들고, 우리 어렸을 때 장작 패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무를 쪼개고 있는 게 안쓰러워 우리 일행이 거들기 시작했다. 역시 젊은 김 대리가 제일 잘 했지만 나머지는 숙달된 애들이 보기에 오히려 안쓰럽게 생각할 정도였지 싶다.
식당에서 바얀이 한국에서 배운 요리솜씨를 발휘해 주방장과 함께 준비한 한·몽 합작 저녁식사가 나오기가 바쁘게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마당에 나가니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호수와 초원을 배경으로 지는 노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문득 "들의 꽃과 공중의 새를 보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운' 들꽃에서 보여지는 '아름다운' 하느님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또 신의 '풍요함'이 아니라 '풍부한' 공중의 새에서 보여지는 '풍부한' 신에게 우리의 주의를 끌었지 않았나 싶다. 이와 같이 자연과 우주에 안기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며 해탈이 아니겠느냐고 감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은 내가 너희들 대신에 네 짐을 내려놔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내가 너희들을 가르쳐서 너희들 스스로 짐을 내려놓게 해주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하고 반문해 보기도 했다.
밤이 되자 자체 발전기로 전기를 공급하나 호롱불 수준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들 마당으로 뛰쳐 나오니 칠흑 같은 밤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없는 청정지역에서 밤하늘을 쳐다보니 정말 주먹덩이 같은 별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럴 땐 폴 설리반이 연주한 '별이 가득한 밤하늘(Sky Full Of Stars)'이란 음악이 딱 어울릴거라 생각됐다.
나로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명한 포도산지인 '헌터 밸리'에서의 감격적인 은하수 밤하늘을 본 이후 다시 경험하는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인간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어찌 궁극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자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래서 옛 사람들은 별에 이름을 붙이고 전설의 이야기를 만들어 끝없는 동경(憧憬)의 나래를 펼친 것이리라.
큼직한 별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난로에서 '탁, 타다닥' 장작 타는 소리와 냄새는 머언 동심(童心)으로 돌아가게 하고 순수한 시정(詩情)을 불러 일으켜, 한없는 행복감과 로맨틱한 분위기에 마냥 들떠 잠을 설쳤던 것 같다. 다만 나의 무딘 표현력이 미치지 못할 뿐 극락과 천당이 바로 이런 분위기가 아니겠는가 싶었다.
1박 2일의 여정이었지만 이튿날 새벽 훕스굴 청정호수에서의 또 다른 장관(壯觀)을 연출한 일출 모습을 뒤로 하고 다시 무룽공항으로 가는 장도에 올랐다. 광활한 초원에 펼쳐진 겔과 여유롭게 노니는 방목떼들이 한결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 다시 광활한 초원을 지나 무룽 공항으로 향했다.
무룽 공항에서 본 통통하고 동그란 얼굴의 몽골 소녀는 지금쯤 아기엄마가 됐을 터이다. 몽골어로 '안녕하세요’는 ‘쎈베노’, ‘감사합니다'는 '바야를라'라고 한다. 이젠 노령기에 들었을 김태화 사장과 바얀 그리고 쥴친 사장에게 안부 인사와 고마움을 전한다. "쎈베노, 바야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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