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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자 수필집

버리는 연습, 떠나는 연습

홍성자 2021-01-14 0

   옷장을 열어보면 새 옷을 사도 걸을 자리가 없다. 옷들이 빽빽하기 때문이다. 신발을 사도 신발장에 포개 놓아야 한다. 포화상태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내가 이 정도면 아마도 다른 분들은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는지, 물자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은 듯 늘 허전한 것은 또 무언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내 나이 칠순, 60여년 전만해도 옷을 기워서 입었고 양말도 기워서 신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교복도 떨어지면 뒤집어서 엉덩이 부분이나 팔꿈치, 소매부분, 단추 구멍까지도 재봉틀로 총총 박아서 다시 만들어 입었다. 50여 년 전 내가 아가씨 때만 해도 누가 입다가 주는 옷이 있으면 이게 웬 횡재인가 했고, 누구에게 입던 옷을 주면 상대방이 그렇게 고마워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먹을 것, 입을 것이 풍성하여 막 버리는 세상이 아닌가? 무엇이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옷들을 정리해야 한다. 사람도 가는데 저 많은 옷을 포개어 입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쳐다볼 것 없다, 검은 가배지 백에 푹푹 넣어서 도네이션 박스에 넣으면 Good will 같은 곳으로 간다. 입던 옷이나 쓰던 물건들 파는 곳으로 가면 어려운 분들이 싸게 사다 입고, 팔다가 남은 물건들은 큰 박스에 넣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나, 재난이 닥친 나라에 구호물자로 보낸다 하니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네이션 박스에 넣어야 한다. 왜 도네이션 박스에 넣지 못하나? 버려야 한다. 버려버릇하면 버리게 된다. 그래서 버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성경에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다만 롯의 처라고만 기록된 그녀 “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성경구절이 있다(눅17: 32). 소금기둥이 된 롯의 처처럼(창19:26) 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미리 버려야 한다. 소금 기둥이 되기 전에, 영원한 내 것은 없다. 


  일본에서는 요즘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라는 것이 유행이라 한다. 옷이나 물건 등을 쌓아 놓지 않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 나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중국이나 인도 페르샤, 그리스 등의 철학자들은 내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었다고 철학서적은 말한다. 바꿔 말하면 외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말로도 해석이 되겠다. 결국 비우는 것이 채우는 것임을. 

  

  지난주 내 주변에 두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한분은 74세, 한분은 65세로 두 분 위암이셨다고 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요즘 수명으로 치면 100세 세상을 지나 120세를 바라본다는데, 살다 말고 일찍들 가셨으니 못내 아쉽다. 천재지변도 아니고 사고도 아닌데 어찌 서둘러 떠나시는가? 

  암이란 병이 어이없는 것은 거의 통증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 자신이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분한 일이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병원에 가면 이미 늦었다고 한다. 아프면 병원에 왜 안 갔겠는가? 

  어떤 암이라도 조기에 발견만하면 수술이나 치료하여 낫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어느 분은 유방암 검사를 했는데, 아주 작은 암 덩어리를 발견하여 유방 위쪽을 조금 절개하고 간단히 수술하더니 그 날로 집에 가라고 했단다. 의사가 말하기를 유방암 검사를 한 것은 참 잘한 일이며, 검사를 한 당신 자신이 행운을 만들었다고 칭찬했다 한다. 

  2년 전 아는 분의 남편도 69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캐나다 온지 20여 년 동안 병원에 가라 해도 아픈 곳이 없고 건강하다하여 한 번도 안 가는 고집을 부리더니 어느 날 자다가 저 세상으로 갔다고 한다.   

  캐나다는 의료비가 전 국민 무료이고, 정기적으로 각종 검사하라는 통지가 수시로 온다, 여기에 따르다 보면 이 세상에 더 머물 수 있는 행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백세인생 노래도 있어 양로원에 위문 봉사 가면, 빠지지 않고 부르는 노래지만 못 간다고 전해라, 못 간다고 전해라 하다가, 끝내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저 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만은 예외이길 바라지만, 그것만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떠남이 피부에 와 닿는다. 그렇다면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집을 떠나는 것부터 시작해 보아야 한다. 떠남도 연습이 필요하다. 결국엔 떠나야 함으로.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로 시작해, 지고가나 안고가나 헛수고로다 하는 12절 까지 있는“허사가”를 깊이 불러보는 싱그러운 초여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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