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의 닭 울음소리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토론토 중앙일보
오피니언 종교 칼럼 베들레헴의 닭 울음소리
종교 칼럼

베들레헴의 닭 울음소리

손정숙 2021-04-07 0

0c154e40399af4ba476c89b7bf4cebdc_1617805477_2329.jpg
 

베들레헴의 첫 새벽은 닭 울음소리가 깨워주었다.


도대체 몇 마리나 되는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닭 떼들의 합창은 음색이나 높낮이의 변화 없이 연창이라도 부르듯 끊임없이 어스레한 산마을을 뒤흔들고 있었다. 새들은 후두 대신 가슴속에 명관이 자리 잡고 있어 노래를 잘 하도록 하여준다고는 하지만 같은 조류 과(鳥類)에 속한 닭 울음소리는 특이한 데가 있었다. 꼬 끼~요오~~. ‘끼’에서 악센트를 높인 목소리는 ‘요오~’에서 더 날카롭게 옥타브를 높이면서 길게 끌기까지 해 그야말로 목청이 터질 듯이 우는 것이었다. 숨이 넘어 갈듯이 울어대는 저 소리는 새 아침이 밝아오는 환희의 노래이기보다는 무언가 더 깊은 호소력을 지닌 부르짖음처럼 들려왔다. 오늘, 팔레스타인 정착촌이 된 다윗 성 한 복판에서 들리는 닭 울음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결코 가볍게 내디딜 수 없는 육중한 무게로 내 발을 선 자리에 묶어 놓았다.  

유다의 성 중 가장 작은 성읍이지만 결코 그 이름이 작지 않으리라 한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자 또한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였다. 다윗은 ‘내 마음에 합 한자’라 일컬음을 얻을 만치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나 부하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일로 인해 진노의 벌을 받았다. 고난 중에 73편의 시편을 저술하며 참회개의 믿음으로 거듭난 그는 왕이 되었지만 결국 간음하듯 이방신을 섬기던 왕국은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일천 여년 후 다윗의 뿌리에서 생육신한 예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공생애 3년을 진리와 의에 대하여 증거하며 복음을 전파한 구세주셨다. 

빵 굽는 마을, 지극히 평화로운 이름의 베들레헴에 새 아침이 번지고 있었다.

어제 본 베드로 교회(닭 울음기념 교회)의 지붕 꼭대기에도 커다란 철제 닭이 앉아있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 꼬 끼~요오~ 아니요.

너는 나를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느냐. 꼬 끼~요오~~ 아니요 

팔레스타인 데모대들이 던지고 간 돌멩이들로 너저분한 골목길 어귀에 장갑차가 그림자처럼 들어났다. 서로 부축이라도 하듯 기대어 선 우중충한 건물들이 저마다 지붕위에 시꺼먼

물 저장 탱크를 서너 개씩 이고 힘겹게 느즈러진 모습도 서서히 떠올랐다. 여기 난민 정착촌에선 빗물이 빵을 굽고 마시는 식수도 되는데 맞은 편 골짜기의 유태인 주택가는 물로 깨끗하게 닦은 유리창에 찬란한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다 한 아버지의 자손들인데, 더 아득히 추슬러 오르면 모두가 하나인데 우리는 왜 서로 빼앗고 죽이며 싸우는 증오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은 명상에 잠겼다. 

이제 소리의 경계마저 잊어버린 내 귀에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정하리라.’ 저 요란한 울음소리를 세배로 곱한다면 나는 소스라치며 깨달았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는 사랑은 익히지 못하고 도리어 주를 모른다고 부인한 나의 삶은 셀 수나 있을까? 알면서 모르면서 휘둘리다 이제는 부인한 사실마저도 잊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었다. 바로 그 울음소리는 채찍이 되어 사랑할 줄 모르고 겸손하지 못한 자신을 질타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베들레헴의 닭 울음소리는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계속해서 울려주고 있었다. 장장 40여분 만에 울음소리는 멎었다. 한 순간이 지나자 고요한 가운데 미세한 소리가 나를 감싼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 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건히 하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