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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맞이 - 신순호

2020-05-21 0
‘탁, 탁, 퍽, 퍽’
아침부터 뒷마당에서 무슨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제 새벽 2시까지 게임하느라 늦잠을 자고 있던 아람이는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뒷마당을 내다 보았습니다.
코로나사태로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갇힌지 어느새 2달이 지나갔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몇일인지도 구분이 잘 안가는 중입니다.
“엄마”
“깼니? 이제 그만 일어나라. 벌써 10시다.”
엄마와 아빠는 뒷마당 잔디위에 커다란 비닐을 깔아놓고 그 위에 여러개의 흙포대를 쏟아붓고 계셨습니다. 아람이는 어슬렁 어슬렁 잠이 덜 깬 채 뒷마당으로 나와 엄마의 삽을 이어 받았습니다.
“뭐하는 거에요? 힘들게.”
입이 튀어나와 볼멘소리를 하는 아람이에게 아빠는 냄새가 고약한 흙 포대를 쏟아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봄은 왔으니 올해 우리 텃밭도 시작해야지. 아람아, 조심해. 이거 양 똥이야.”
“웩! 똥이요?”




아람이는 질색을 하며 한발 물러섰고, 허둥거리는 아람이 때문에 엄마 아빠는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흙의 정체는 양 똥을 흙과 함께 발효시킨 비료라고 하셨습니다.
“에이, 왜 똥을 섞는 거에요.”
“식물들 영양제야.” 아빠는 옛날엔 사람의 똥도 비료로 썼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하시면서 양의 생똥이 아니라 다 발효된 거라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람이는 혹시나 몸에 묻을까 조심하면서 흙과 골고루 섞었습니다.
그 사이 아빠는 먼저 있던 텃밭의 흙을 삽으로 다 한번씩 뒤집고 휘저어 , 겨울동안 딱딱하게 굳었던 흙들이 잘게 부서지고 속에 있던 부드러운 흙과 섞이도록 했습니다.
아빠는 모종을 심기전에 흙이 숨 쉬도록 해주어야 모종들이 뿌리를 잘 내릴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람이는 아빠가 다 뒤집어준 흙 위로 양 똥 거름이 섞인 새 흙을 골고루 뿌려주었습니다. 
거름흙을 뿌리면서 보니 텃밭 흙 속에서 지렁이가 깜짝놀라 튀어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렁이가 많아야 흙이 건강한거라고 아빠는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흙과 씨름하면서 오랜시간 삽질을 하다 보니 아람이도 아빠도 허리가 아팠습니다. 어느새 해도 쨍쨍하게 내리쬐면서 이마에선 구슬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빠, 그냥 마트에서 사먹으면 되지 왜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해요?” “글쎄다. 힘들긴 해도 채소 자라는 것을 보는게 좋고, 싱싱한 채소를 늘 먹을수 있고, 가을엔 열매를 얻는 보람도 있고. 아빠는  다 좋은데?”
“에휴, 난 이 다음에 농사 안하고 사 먹을 거에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라, 하지만 이 다음에 봄이 되면 너도 모르게 모종 사러 다닐걸?”
그때 엄마가 쟁반에 한가득 음식을 들고 나오셨습니다.
“우리, 날도 좋은데 오랫만에 밖에서 점심 먹어요.”
“그럽시다. 새참 먹는것 같고 좋구만.” 엄마는 뒷마당 구석에 잔뜩 나 있던 참나물을 뜯어 넣고 밥을 해서 갖은 양념장을 함께 내오셨습니다.  평소 채소를 안좋아하는 아람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참나물밥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에 저절로 몸이 앞으로 갔습니다.  비빔장을 넣고 쓱쓱 비빈 나물밥을 한입 가득 입에 넣으면서 아람이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새참이 뭐에요?”
“열심히 일하다가 중간에 잠시 쉬면서 먹는 음식을 새참이라고 해. “
“난 또, 새가 먹는 음식인가 했네요. 그런데 나물밥은 언제부터 먹은 거에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보릿고개라는게 있었어. 5-6월달이니 바로 지금이 보릿고개 시기지. 가을에 거둬들인 쌀이 거의 떨어지고, 새로 보리를 수확하려면6월까지 기다려야 해서 먹을 것이 없던 때를 말해.  쌀은 얼마 없는데 밥을 해야하니 하는 수 없이 들판에 널린 먹을 수 있는 여러 풀들을 넣고 밥을 지어 양을 늘린 게지. 지금은 건강식이니 영양식이니 해서 일부러 찾아서 먹지만 옛날에는 먹을게 없어서 먹던 음식이야.”
“그때는 마트에 쌀을 안 팔았어요? “




아람이의 질문에  아빠는 지금처럼 살기 좋아진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이 지구 어딘가에선 춘궁기를 힘겹게 나는 곳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먹을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람이는 그릇에 남은 마지막 밥알 하나까지 말끔히 비웠습니다.
  오손도손 맛 있는 점심을 마치고 이젠 모종을 심을 차례입니다. 엄마는 4월부터 모종판에 씨앗을 뿌려 모종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아람이는 처음에 떡잎이 나오고 조금 지나 본잎이 나오는 모습을 계속 보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 블랙 토마토는 지난 달 마트에서 사온 토마토가 너무 맛있어서 먹다가 씨앗 몇개를 남겨 화분에 심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싹이 나오더니 어느새 제법 큰 모종이 되었습니다. 
아람이는 제일 먼저 토마토 모종을 심은 다음 둥근 망으로 된 지지대까지 박아주고 나니 더 뿌듯해졌습니다.
상추, 아욱, 깻잎, 쑥갓, 고추 들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미리 파 놓은 구멍안에 하나씩 밀어넣고 흙을 토닥토닥 덮어 주었습니다.  작년 늦가을에 심어 둔 뒤, 추운 겨울을 지나 단단한 흙을 뚫고 나온 마늘은 어느새 아람이의 무릎 길이까지 자랐습니다. 






포도나무를 살펴보니 줄기마다 아주 작은 싹눈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휩쓸고 있는 무시무시한 전염병 코로나 사태로 시간이 멈춘것 같아 보였지만 봄의 생명들은 조용히 또 한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람이는 모종 심은 곳마다 넉넉하게 물을 주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오늘 하루 작업한 쓰레기들을 깔끔하게 치우고 나니 어느새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매일 게임만 하다가 모처럼 햇볕을 많이 쏘였더니 얼굴이 붉으스름하게 탔지만 너무나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이제부턴 햇빛과 흙, 물이 서로 도와가며 자연을 키울 것입니다. 
지금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줄기는 무겁게 달릴 열매와 여름의 폭우를 견딜만큼 튼튼해질 것입니다.
벌과 나비를 불러모을 꽃이 피고 꽃이 진 자리엔 탐스러운 열매가 매달릴 것입니다. 아람이는 내일부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뒷마당 텃밭에 물을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블랙토마토를 따 먹을 때쯤엔 친구들과 공원에서 마음껏 놀 수 있고, 학교도 다시 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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