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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그가 찾아왔다

최봉호 2021-01-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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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에 그가 찾아왔다 


2021년 신축년辛丑年, 신축년은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天干 신辛’이 붙은 ‘흰 소’의 해다. 불가에서는 흰 소’를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밤 까먹은 자리는 있어도 소 잡아먹은 자리는 없다.”는 속담처럼 인간은 깨달음은 커녕 소의 어떤 부위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우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돼 가다가 소가 된 것”으로 “아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고 신성에 달하기 위해 가장 본받을 선생”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어렴풋이 무언가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는 외양과 행동이 독특해서 인간들에게 근면, 희생, 고집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그런 이미지와 어울리게 소는 인간과는 달리 우직하고 걸음이 느리지만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래서 인간들은 소에서 근면과 성실을 발견하고 있다. 이런 소띠에 태어난 사람은 소같이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된다”는 덕담이 널리 통용돼 왔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까지 소 팔아 대학을 나와 출세한 사람들도 꽤 많다.


서양에서는 소가 단단한 뿔로 아래에서 위로 치받는 역동적인 모습을 긍정적인 도약으로 보았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주식시장의 상승장을 황소장bull market으로 부르고,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황소상이 건립돼있을 정도다. 이와 같이 소가 부귀를 가져다준다는 의미는 동서양이 같아 보인다.


하지만 소의 일생은 인간들로 인해 고달프기만 하다. ”커다란 눈, / 껌벅거릴 때마다 / 조여 오는 삶의 코뚜레. // 향바랜 향나무에 / 박탈당한 콧김의 부자유가 / 워낭소리로 울고..., // 자유를 향한 그리움의 고삐가 풀려 / 눈물로 젖는 슬픈 하늘, / 등에 지고 걷고 또 걸어도 / 일생은 우보천리牛步千里길.“ -<졸시: 장편掌篇 - 우보천리牛步千里에서>


소! 하면 유별나게 생각나는 시인이 있다. 소주와 설렁탕과 음악을 좋아했던 시인,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사랑했던 시인, 1984년 그가 이 세상 떠나는 날, 가까운 시인 한 사람과 그를 따랐던 문학청년 한 사람만이 그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던 시인. 그는 욕심 없는 예술가였다. 그런 그가 신축년 새해 아침에 나를 찾아왔다. 


“자막도 없는/ 16밀리 낡은 필름 속을 / 갈지자로 걸어오는 / 38따라지, // 직장職場이 시詩인 / 그의 LP판 음반은 오늘도 만취해 / 고래고래 세상을 삿대질인데, // 술 없는 / 황야에서 소주만 찾던 자칭 / 좌객坐客 // 술 취하면 더 / 선명한 영상으로 내 / 가슴속으로 비쳐오는 ---” -<졸시: 장편掌篇 - 김종삼에서>


나보다 더 가난했고, 나보다 더 외로웠던 시인 김종삼, 나는 그를 문단의 대 선배라기보다는 인생의 스승 중 한 분으로 존경하고 있다. 그의 작품 묵화墨畵를 만나고서부터였다. 묵화에서 보기 드문 따듯한 인간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 이 하루도 / 함께 지났다고, /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묵화墨畵 전문>


하나의 마침표와 세 개의 쉼표로 짜인 작품 속에서 시인의 존재가 보일 듯 말 듯 비치고 있다. 이런 그의 작품을 흔히 “내용 없는 아름다움”, 또는 “여백의 시학”이라고 말한다. 즉 그의 시가 “자유연상에 의한 이미지 조합”으로 “ 비어있는 스크린에 잔상으로 비치는 부재의 형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남기고 떠난 김종삼, 문단에서는 그를 “가장 완전도가 높은 순수시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묵화에서 그는 소와 할머니의 관계를 끈끈한 동반자적 존재로 그렸다. 소는 쟁기질에, 할머니는 호미질에 굳은살이 박였을 목덜미와 손, 소의 목덜미는 할머니의 손이고, 할머니의 손은 소의 목덜미이다. 그런 손과 목덜미가 하루 일을 끝내고 마주서서 말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늘 하루도 발잔등이 붓도록 함께 고생이 많았다.’는 고달픔과 쓸쓸함, 그리고 따듯한 위로의 말이 여백에 사랑으로 가득 담겨있다. 이와 같이 불필요한 제스처를 모두 쳐내고 여백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는 그의 작품에서 행간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새해 아침, 김종삼 시인의 묵화를 다시 감상하면서 굳은살이 박인 목덜미나 손을 한 번도 쓰다듬어본 적이 없는 내 손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흰 소띠인 올해, 소같이 열심히 글쓰다보면 굳은살박인 목덜미나 손 하나쯤 만나 뭔가 크게 깨닫게 되는 한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크다. <*>


<Friday, January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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