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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중앙일보
홍성자 수필집

색소폰 언니

홍성자 2020-11-26 0

“언니 언제 와? 색소폰 언니 언제 와?” 

“네, 다음 달에 와요, 한 달 후에”

“아이고 다음 달까지 언제 기다려”

   *** 요양원 위문 봉사를 마치고 돌아설 때면, 어머님들은 워커를 밀며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오시면서 집으로 가는 우리들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신다. 

“어머님들 들어가세요.” 

“언니 가는 거 보려고, 색소폰 언니 가는 것 좀 보려고, 우리 걱정 마”

우리 봉사요원들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면 더 섭섭하실 텐데 왜 따라오시나, 봉사 끝나고 오려면 몇 분이 꼭 엘리베이터 있는데 까지 따라오신다. 가슴이 쏴아 쓸어내리며 왈칵 눈물이 난다. 

요단강가 대기조로 서성이는 부모님들이시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흘러간 노래들을 색소폰으로 연주해 드리고, 박수치며 노래도 부를 때, 그냥 팔만 흔드는 춤을 추기만 해도 애기들처럼 좋아하신다. 

아, 사람이 나이 들면 애기들처럼 되는가? 저토록 외로운 것인가?

  내 나이 70 인데, 20여년쯤이나 아래인 자식뻘 되는 나를 ‘색소폰 언니, 안동역 언니’ 라 부르신다. 

  봉사하는 이곳은 캐나다 토론토의 *** 한인 요양원이다. 봉사자들 몇 분과 한 달에 한번 부모님 같은 노인들을 위해 위문 봉사 온지도 2019년 11월로 만 6년이 넘었다. 


  어머님들 모습이 다가 올 나의 자화상임을 어찌 부인하랴, 나도 머지않은 날 이곳에 들어 올 텐데 하고 생각하면, 위문 끝나고 어머님들 아버님들을 두고 떠나오는 발걸음이 주저주저해지고 싸늘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색소폰! 죽더라도 불어보고 죽으리라는 소녀시절의 야무진 꿈이 환갑이 넘어서야 이루어져 요양원 봉사도 하게 되었음을 참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어느 아버님은 “내 나이가 어때서”를 노래할 테니 나보고는 색소폰으로 연주하라 하신다. “꿈에 본 내 고향” 좀 불어 봐, 몸은 100세를 눈앞에 두고 힘 없는 박수를 치면서도 마음만은 청춘임을 말릴 수 없다. 

  어머님들은 “우리들은 ‘동숙의 노래’를 합창할 테니 언니는 나팔 불어” 하신다. 힘은 없어도 소녀 같은 마음으로 어찌 그리 노래를 잘들 부르시는지........ 


  가수 진성의 노래 “안동역에서”를 내가 늘 노래해 드렸더니, 이제는 어머님들도 합창으로 가수 진성처럼 감정까지 넣어 부르시는지 정말 신난다. 

  이 나이에 대중 앞에서 몸까지 흔들면서 색소폰 연주를 한다는 것이 비록 아마추어지만, 스타탄생의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이 정도로 불 수 있었나? 스스로 놀라기도 하고 환호성이 하늘까지 올라가는 아마추어 한국인 아줌마, 뭣도 하면 는다고 요양원 위문봉사를 하다 보니, 색소폰언니라는 닉네임에 안동역 언니라니 오늘도 엔돌핀 펑펑 나오는 가슴 뿌듯한 하루다. 


(201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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